[ 예능PD의 재밌게 말하는 노하우 전수 ]
오랜만에 지인을 만났다. 오래 전부터 예능PD를 지망했던 지인. 시간이 날 때마다 예능프로그램을 보고 분석한다고 했다. 흥미로웠다. 대화를 마친 후 집에 돌아오는 길에 든 생각.
‘예능프로를 많이 봐서인가? 얘기를 참 재밌게 하네. ㅋㅋㅋ 재밌다~’
마침 읽을 책을 찾던 차에 보인 책! 표지에 쓰인 ‘예능 피디가 알려주는 재미있는 대화법’이란 문구가 이 책을 선택하게 했다. 화술 관련 책이 수없이 많지만 예능PD가 직접 쓴 말하기 책은 별로 본 적이 없어서, 그리고 책 자체가 재밌을 거 같아서!
[ 내 말은 왜 안 먹히는 걸까? ]
즐거운 대화에 재미있는 이야기가 꼭 필요하지는 않다. 많은 사람들이 착각하는 것 중 하나가 말 잘하는 사람은 재미있는 이야기를 많이 알고 있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그리고 즐거운 대화를 함에 있어 대게 나부터가 재미있는 이야기를 해야 한다고 착각한다. 당사자가 재미있는 이야기를 억지로 끄집어내려고 하지 않을 때 오히려 즐거운 대화가 된다. 재미있게 이야기하려는 의도가 엿보이게 되면, 듣는 쪽은 오히려 김이 샌다. 뜻밖의 대답, 리액션이 재미를 만들어낸다. 우선은 잘 듣고 있다가 자연스럽게 끼어들었을 때 더욱 큰 재미를 줄 수 있다.
‘말이 먹힌다는 것’은 상대에게 받아들여지는 것이다. 자리의 분위기를 읽을 줄 알고, 상대의 마음을 헤아리는 멘트가 결국은 먹히는 말이 된다. 분위기에 맞게 재미있는 멘트를 구사하는 사람은 머리가 좋다거나 센스가 있다는 평을 듣는다. 그런데 속내를 들여다보면 그는 남을 배려하는 자세로 객관적인 시점에서 대화할 줄 아는 사람일 가능성이 높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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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미있는 이야기 이전에 상대에의 관심이 중요하다. - 말이 먹히는 사람 : 좋은 이야기보다 좋은 질문을 할 줄 안다. - 먹히지 않는 사람 : 재미있는 이야기를 해주고자 애를 쓴다. |
[ ‘나도요, 저도요’는 하지 않는 게 낫다 ]
대화의 첫단계로서 잡담을 통해 사전 분위기를 조성하는데, 이 때 상대가 자기 이야기를 하는 즐거움을 가로막는 일만큼은 꼭 삼가는 게 좋다. “요전에 골프 치러 가서 베스트 스코어를 기록했어요.” 이런 말이 나왔을 때 이렇게 되받는 사람이 있다. “저도 주말에 골프 치러 갔었는데...” 이것은 일종의 ‘이야기 도둑’라고 할 수 있다. 게다가 거기서 대화가 막혀버린다. 말을 가로채는 순간 이미 재미있는 사람, 말이 잘 통하는 사람에서 아웃이다. ‘나도요, 저도요’처럼 상대의 말을 끊는 습관은 기분 좋은 대화에 마이너스이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할까? 간단하다. 잘 들어주고, 잘 물어주는 역할에 충실해야 한다. 상대가 특별하다고 여기는 에피소드에 대해 비슷한 경험을 이야기하는 것은 그 특별함을 깎아내리는 행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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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대가 즐거워하는 이야기는 상대 몫으로 남겨둔다. |
[ 대답할 때는 구체적인 이야깃거리를 넣는다 ]
소개팅이나 첫 만남에서 취미를 물어보는 사람들이 있다. 그럴 때 아무 생각 없이 대답해 분위기를 가라앉히는 경우가 있다. (질문) 어떤 음악 좋아하세요? (대답1) 기분에 따라 달라요 (대답2) 안 가리고 그냥 이것저것 들어요 이래서는 대화가 이어지지 않으며 여기서 끝이다. 대답에 구체적인 내용을 넣으면 대화는 거기서 다시 이어진다. (대답3) 취미까지는 아니고요, 요즘은 플라잉 요가 다녀요. → 그게 뭐야?
대화 초반에는 더욱 구체적으로 말해야 한다. 어떤 자리에서든 대화 초반부에 잘 대처해야 한다. 중반 이후에는 상대의 성향이 파악되므로 생각이나 기분 같은 추상적인 소재로도 대화가 이어지지만, 초반에는 상대에 관한 기초 정보를 모으는 단계다. 이때 막연한 질문을 받으면 대화가 끊어지기 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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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소하더라도 구체적인 이야깃거리가 대화를 이끈다. |
[ 그 사람의 말이 재미있는 이유 ]
앞서는 공기가 훈훈해지는 대화 요령이었다면 이제는 웃음을 이끌어내는 대화법의 진수를 살필 차례다. 평소 재미있는 사람들은 아무렇지 않게 내뱉은 말 한마디로 상대를 웃긴다. 어설픈 몸 개그나 코미디를 하는 게 아니다. 한편으로 아무렇지도 않아 보이니까 ‘어째서 재미있는지’를 의식적으로 깨치는 게 쉽지 않다. 바로 그 지점을 익혀야 한다.
가장 기본은 자신에게서 벗어나기, 즉 자신이나 해당 모임을 관찰하는 습관을 들이는 것이다. 상대가 무시하는 말을 해서 욱할 때, 반사적으로 말대꾸를 하는 경우와 ‘나 지금 무지 화났어’라며 감정 상태를 인식한 경우는 머리를 쓰는 방식이 전혀 다르다. 나오는 말도 달라진다. 반사적 반응은 상대와의 관계를 망칠 수 있지만 감정을 인식한 경우 ‘그래도 관계를 해칠 수는 없지’라고 생각했다면 표현 수위는 한결 부드러워진다. 이런 이유로 먹히는 말을 하기 위해서는 자리 분위기부터 살필 수 있어야 한다. 일상에서 나를 객관화하는 습관을 의식하기 바란다. 몰랐던 자신의 한 단면을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재미있는 한마디’를 구사할 수 있게 된다.
[ 재미있는 사람은 표현을 바꾸어 말한다 ]
말을 재미있게 하는 사람은 말대꾸를 할 때 표현을 바꾸는 데 능숙하다. 예로,
A : 오늘 저녁도 꽁치 반찬인데 괜찮아?
B : 또 꽁치야? 아무리 제철이라도 그렇지 적당히 좀 먹자.
A : 오늘 저녁도 꽁치 반찬인데 괜찮아?
C : 꽁치?! 매일 DHA 섭취하니까 몸에는 좋겠네. 난 단백질을 많이 먹어야 하는 체질이긴 하지만...
B와 C의 대답은 어떤 차이가 있을까요? 꽁치는 꽁치이지만, 말주변이 좋은 사람은 대꾸할 때 다른 표현이 없는지 순간적으로 떠올린다. 이때 DHA가 떠올랐다면 ‘DHA→몸에 좋다→하지만 다른 게 먹고 싶다’로 연상을 이어간다. 말대답을 하는 순간에 머릿속에서 연상 게임이 시작되는 것이다. 이 같은 방식을 활용하면 대화가 훨씬 풍성해지고 이야기가 톡톡 튀게 된다.
[ 순간적인 연상으로 대화 관점을 바꾸어 본다 ]
순간적인 연상으로 대화 관점을 바꿔보자. 다음 예는 저자가 학창 시절 단체 미팅을 하며 외모 때문에 충격 받았던 실화다.
여자A : 요시다 씨는 으음, 누군가를 닮았어요. 여자B : 나베 오사미?
그러자 다들 코미디언 나베 오사미의 코믹한 표정이라도 떠오른다는 듯이 박장대소했다. 이런 농담이 나온 상황에서 사람들은 보통 어떤 반응을 보일까? (보통 사람) 닮기는 어디가 닮았어요?!
한 방 먹은 상황이므로 대다수는 일단 부정할 것이다. 하지만 그래서는 재미도 없고 좋은 인상도 남기지 못한다. 순간적으로 저자는 머리를 굴려 이렇게 대꾸했다.
(저자) 그래도 전 제대로 시험 봐서 들어왔는데요. (반응) 오오~
모두의 반응은 기대 이상이었다. 당시 나베 오사미 씨는 대학 부정입학 건으로 화제의 중심에 있었기에 이것이 좋은 반응을 이끌어 낼 수 있었다. 부연하자면 ‘나베 오사미’란 이름을 들은 순간에 그가 어떤 사람인지 생각했다. 동시에 ‘닮았다’는 말에 ‘닮지 않은’ 면을 떠올릴 수 있었다.
전혀 공감을 얻지 못하는 말대꾸는 분위기를 망칠 수도 있다. “무슨 소리! 잘 봐요. 기무라 다쿠야 닮았지!” 그 자리에 팬이라도 있었다면 물컵이 날라왔을 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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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상 + 관점 바꾸기’ 로 뜻밖의 대답을 찾는다. |
[ 상대의 말에서 모순과 다른 의미 찾아내기 ]
일상 대화에서 재미를 발견하는 관점 중 모순 찾아내기와 다른 의미 찾아내기가 있다. 먼저 모순 찾아내기의 예로, 맛집을 좋아하는 한 선배가 2차를 가자며 이렇게 말했다. “고독한 미식가, 라는 가게에 다같이 가자. 분위기 정말 좋아!” 이 말에 어떤 모순이 있을까? 얼핏 보면 모르겠지만, 이럴 때 재미있는 사람은 모순점을 찾아낸다. “고독하다는데 다함께 가자고?” 생각지 못하고 허를 찔린 사람들은 웃게 마련이다.
똑같은 말에서 다른 의미 찾아내기의 예로는, 잘 알려진 유행어 등을 색다른 의미로 사용하는 예가 있다. “샐러리맨 Neo”에는 대입학원 TV광고를 패러디한 장면이 나온다. 기존 광고에서 선생님의 멘트, “공부는 언제 할까요? 지금이죠!” / Neo에서는 음향, 화면 구성을 동일하게 하되 이직에 대해 조언해주는 컨셉으로 방송에 내보냈다. 이 패러디는 큰 인기를 끌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