괴물이 된 이십 대의 자화상

작성자 여루
출간일 2013-12-05

우리는 어렸을 적부터 차별을 부정적인 단어라고 배워왔다. 차별의 정의는 기본적으로 평등한 지위를 가진 집단을 자의적인 기준에 의해 불평등하게 대우함으로써, 특정집단을 사회적으로 격리시키는 통제 형태'이다. 차별은 특정집단을 사회적으로 낙인 찍고 격리시키는 행위이고, 이는 분명히 옳지 않은 것이다.

그런데 이 책에서는 이러한 차별에 찬성한다고 한다. 이 책에서 말하는 '차별'은 바로 타인과 나를 끊임없이 비교하며  앞만 보고 내달리는 이 시대 청년들의 절규이기 때문이다.

 

 

암울한 시대의 피해자이자 가해자인 이십대의 진짜 얼굴을 보자

 

이 책은 암울한 시대 속에서 암울함에 물들어버린 청년의 모습을 그려냈다. 기성세대가 만들어낸 무한경쟁의 삭막한 세상 속 피해자는 바로 우리, 청년세대였다. 하지만 이제 우리는 가해자가 되어버렸다. 극심한 입시경쟁과 취업난은 구태의연하며, ‘수저론으로 청년세대 내에서의 갈등은 더욱더 심화되고 있다. 이런 시대에 살아가고 있는 암울한 청년들이 내뱉은 말이 바로 우리는 차별에 찬성합니다이다.

 2004년 1경부고속철도의 개통을 약 3개월가량 앞두고 코레일은 KTX의 여승무원을 공개 모집했었다지상의 스튜어디스라는 매력적인 채용 공고는 많은 여성들로 하여금 지원하게 만들었다게다가 채용 당시 1년이 지나면 정규직으로 전환해 준다는 코레일의 약속도 있었다하지만 약속은 지켜지지 않았고이 과정 속에서 투쟁이 벌어진 것이다이들은 높은 채용 경쟁률을 뚫고 채용이 되었고분명 정규직으로의 전환을 약속받았지만열악한 근무 환경과 위탁업체가 매년 바뀌는 불안한 비정규직의 신분으로 절규해야만 했다. 하지만 지난 7월 해고 승무원을 정규직으로 채용하는데 합의했고, 그들은 해고된 지 12년 만에 극적으로 정규직으로 전환되었다.

저자는 2008년도에 대학 강사로서 한 대학의 수업시간 중 위 사건을 주제로 KTX 여성승무원의 해고와 비정규직 투쟁에 대한 찬반 토론을 진행했다. 경영학을 전공하는 한 학생이 비정규직이 노력 없이 정규직으로 지위가 상승하는 것은 불공평하다라고 말했을 때, 저자는 내심 이 학생이 다른 학생들에게 비난을 받지 않을까 걱정이 되었다고 한다. 그런데 의외로 과반수가 넘는 학생이 이 학생의 의견에 찬성한다는 의사를 표했다.

나는 여성승무원의 해고와 비정규직 투쟁이 바람직하다고 생각해왔다. KTX의 개통으로 시속 300km의 속도로 부산에서 서울을 단 3시간 만에 갈 수 있는 초고속 시대가 열렸음에도 불구하고, 승무원들이 정규직으로 돌아가는데 있어서는 매우 오랜 시간이 필요했다.나는 늘 이러한 문제가 있을 때마다 직접적인 당사자는 아니지만, 주변 사람들이 투쟁에 함께 참여토록 고무하려고 노력했다. 잘못된 것을 바로 잡기 위하여, 문제 제기를 위한 행동의 대열에 참여토록 고무하는 것은 나뿐만 아닌 모두의 책무라고 생각했기에 했던 행동이었다. 격동의 역사 속에서도 우리 사회가 이만큼이나마 성장할 수 있었던 것은, 때로는 목숨을 담보하면서도 대중들이 바른 생각을 가지고 바른 말을 할 수 있도록 도운 지식인들의 덕분이라 생각한다.

하지만 대학이라는 고등교육기관에서 수준 높은 학문을 탐구하는 대학생들이, 지식인의 대열에 서있는 우리가, 다시 말해서 청년들이 부당함에 고개 숙이고 차별에 찬성하는 세상이 되어버렸다. KTX 여승무원들의 정규직 전환 요구에 대한 이야기 후에 등장하는 용산참사, 쌍용자동차 해고와 같은 문제들 또한 이와 같은 맥락이었다. 결국 본인이 선택했기에 일어난 결과이고, 그 결과에 대한 몫은 스스로가 짊어지는 게 맞다.’는 것이다

 

기회는 평등하게, 과정은 공평하게, 결과는 정의롭게

문재인 대통령 취임식 연설

 

내가 살고 있는 사회는 무엇인가 이루어지지 않으면 그것은 개인이 노력을 하지 않은 탓이라는 주장이 팽배해있다. 하지만 나는 취업난, 입시경쟁 등의 다양한 사회적 문제들을 개인의 탓으로 귀결시킬 수 없다고 생각한다. 우리 사회에서 과연 기회는 평등하게 주어지며, 과정은 공평하게 이루어지고 있으며, 결과는 정의로운가? 나는 결코 아니라고 생각한다.

기회는 불평등하게 주어지고 있다. 한때는 비선실세였던 최순실의 딸 정유라는 부모 잘 만나는 것도 실력이라는 발언을 했다. 최근 언론을 통해 이슈되고 있는 서울교통공사의 친인척 채용비리에 대한 의혹은 나를 포함한 청년들이 기회의 균등에 의심을 품게 만든다. 물론 아직 사실관계에 대해 명확히 나오지 않은 상황에서 섣불리 이 사건을 언급하는 것은 옳지 않다. 하지만 이런 채용비리와 같은 사건이 비일비재하게 일어나고 있다. 이는 아직도 기회의 평등을 좀먹는 존재가 사회 곳곳에 있다는 것을 알 수 있게 해준다.

또한, 교육은 평등하고 공평하지 못하다몇 가지의 중요한 교육의 목적 중 계층의 이동의 가능성은 점점 더 낮아지는 것이 현실이다. 물질적 풍요로움에 따라 제공받을 수 있는 교육의 질적 차이의 간극은 심각하게 벌어지고 있다. 이런 현실 속에서 과연 어떤 결과가 공정할 수 있을까?

 

이젠 더 이상 사회적 문제를 나의 탓으로 돌리지 말자

 

저자는 "멈추면, 비로소 보이는 것들", "아프니까 청춘이다"와 같은 힐링 담론에 대해 맹렬히 비판한다. 나 또한 이 의견에 동감한다. 힐링담론은 해도 안 되는 사회에서 계속해서 '노력'을 운운하며, 맹목적으로 고진감래만을 강조하며 현실을 부정한다. 물론 자신을 성찰하라는 의미로 쓰인 책이라는 것은 알고 있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어찌됐건 불합리한 구조의 사회에 대한 문제 제기는 하지 않고청년들로 하여금 이들의 탓으로 귀결시킨다는 것이 문제이다.

 

어느 한 개인이 사회를 바꾼다는 것은 분명 불가능에 가까운 일이다. 하지만 최소한 한 사람이라도 어떤 사안에 대해 문제의식을 느끼고 있어야만 사회가 바뀔 여지라도 생긴다고 생각한다. 5·18민주화운동, 4·19혁명, 촛불 집회와 같이 역사적으로 큰 사건들은 모두 어느 한 특정 개인이 일궈낸 일이 아니다. 문제의식을 가진 이들이 하나 둘 모이고 모여서 모두가 함께 만들어낸 역사이다. 우리는 문제 제기를 위한 행동의 대열에 참여해야 한다. 격동의 현대사 속에서 희생했던 지식인들처럼, 잘못된 이 사회의 구조를 바로잡기 위하여 명확한 대안이 보이지 않더라도 계속해서 공론화하고 담론을 나눈다면 "우리는 차별에 찬성합니다"가 아닌 "더 이상 차별은 없습니다"라고 말할 수 있는 건강한 사회로 변화할 수 있지 않을까?

청년실업 이십대 수저론 차별 사회문제 불평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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