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이 죽고 왕비가 죽었다” 여기에서 스토리와 플롯의 차이를 발견해보자. 영국의 소설가 포스터는 저서인 <소설의 이해>에서 왕이 죽었다는 사건과 왕이 죽었다는 사건을 시간 순서대로 나열하면 스토리가 되지만, 두 사건에 인과관계를 부여해 왕이 죽자 슬픔을 못 이겨 왕비도 죽었다고 하면 플롯이 된다고 말했다. 우리가 어떤 이야기에 흥미를 갖고 집중하게 되는 것은 실상 이 플롯의 완성도에 기인한다.
브랜드 커뮤니케이션, 수많은 브랜드들은 멋진 이름을 만들고, 콘셉트를 한 줄의 문장으로 정의하고, 근사한 디자인을 선보이지만 정작 소비자와의 커뮤니케이션은 따로 놀다시피 해 브랜드 관리의 방향을 잃곤 한다. 이는 브랜드를 구성하는 다양한 요소들의 유기적 연결에 실패했기 때문이다. 탁월한 브랜드는 구성요소들의 유기성과 커뮤니케이션의 인과관계는 고유의 맥락이 되어 궁극적인 ‘자기다움’을 강화한다.
맥락은 ‘사물 따위가 서로 이어져 있는 관계나 연관’을 뜻한다. 아마존은 오직 ‘고객 우선’이라는 맥락위에 존재하기에 방대한 사업 포트폴리오에서도 길을 잃지 않으며, 테슬라는 ‘지속 가능한 에너지’라는 맥락을 통해 탄탄한 사회적 동의를 얻어 매력적인 전기자동차 사업을 전개하고 있다. 샤오미는 가성비 이전에 ‘고객을 친구로’라는 참여형 소비를 브랜드의 맥락으로 이념화 했다.
이러한 맥락은 단지 그럴듯한 관념에 그치지 않고, 실제 사업을 전개하는 기본 플롯폼이 되고, 커뮤니케이션과 소비를 통해 고객 경험으로 완성 된다. 이렇게 구축된 브랜드의 맥락은 쉽게 무너지지 않는 브랜드의 존재 이유이자, 쉽게 차별화하기 어려운 세상에서 고유의 존재감을 만들어낸다. 이 책을 통해 마지막까지 살아남는 브랜드의 특성을 알아보고, 나와 내가 일하고 있는 조직의 브랜드에 대해 고민해보자.
왜 지금 맥락인가? 단단한 맥락은 자기다움에서 시작된다
최근 부서 간 합의과정에서 난관에 봉착한 적이 있다. 대부분 부서의 논리 중 하나는 ‘경영진의 지시’이다. 사실 경영진은 방향을 지시한 것이지 방법을 지시한 것은 아니다. 이기는 마케팅 4.0에 보면 단순히 브랜드를 정의하고 광고를 하는 것으로 경쟁력을 갖추는 시대는 지났다고 나와 있다. 인지도는 무엇일까? 광고에서는 상기도와 호감도가 있다. 인지도는 어디에 나오는 용어 일까? 갑자기 비전문가가 전문가인척 한다는 책 ‘전문가와 강적들’이 떠오르는 이유는 무엇일까. 생각이 많아진다. 우리의 상품과 서비스가 시장에서 경쟁력을 갖추지 못하는 이유가 무엇일까. 왜 우리는 데이터로 분석하지 않고, 주관적인 판단 즉 추정으로 넘겨짚기만 하려는 것일까. 안타까울 따름이다.
마케터라면 새로운 맥락을 이해하는 데서 한발 더 들어가 새로운 시장을 만들기 위해 누구보다 먼저 새로운 맥락을 발견해야 한다고 저자는 말한다. 예기치 못한 성공을 기대하거나, 하던 대로 열심히 하는 것, 어느 것도 마케터의 일이라고 할 수 없다. 그런데 왜 우리 마케팅 기획자들 대부분은 이렇게 하고 있을까. 은행을 대표하는 마케팅 기획자라고 말할 수 있을까. 1년에 마케팅 책은 몇 권이나 읽는지, 분석법에 대해 배우고, 고민해보는 지 과연 궁금하고 속상할 따름이다. 저자는 지금이 아무것도 필요하지 않은 시대라고 말한다. 1st 세대는 물건이 부족한 시대였다. 만들면 팔리는 시대로서 상품 자체가 가치를 가진다. 2nd 세대는 상품이 넘쳐나 상품판매 장소, 즉 플랫폼이 중요한 시대다. 여전히 상품은 가치를 지니고 있지만 이제 어디에서 살 것인가가 중요해진다. 플랫폼에 따라 동일한 제품도 가격, 애프터 서비스, 주변기기 구성 등에 차이를 보이고, 고객만족도도 달라진다. 3rd 세대는 우리가 살고 있는 시대, 상품도 플랫폼도 넘쳐나는 시대다. 상품은 매우 높은 수준에서 평준화 되었고, 플랫폼도 차별성이 매우 적어졌다.
마스다 무네아키의 표현을 빌자면 이제 필요한 것은 제안 능력이다. 고객에게 선택의 기술을 제공하는 능력이 필요해진 것이다. 이제 고객에게 중요한 것은 무엇을 사는가, 어디서 사는가가 아니라 왜, 어떻게 사는가다. 과거와 달라진 소비의 이유와 방식을 이해해야 고객에게 새로운 맥락을 제안할 수 있다. 우리는 지금까지 의사결정 과정을 인지, 이해, 선호형성, 구매로 개념화해왔다. 그러나 지금은 이 과정을 훨씬 빠르게 진행하거나 각각의 단계를 뛰어넘기도 하며 심지어 순서를 바꾸기도 한다. 정보가 충분하기 때문이다. 정보가 충분하면 조사를 이유로 구매를 미룰 이유가 사라지고 더불어 각 단계를 생략하고 바로 구매하는 것에도 큰 위험을 느끼지 않는다. 소비자들은 제품에 대해 거의 완벽한 정보를 얻을 수 있는 시대이다. 필요에 의한 소비는 최소화 하고, 의미와 즐거움을 위하는 소비는 점점 늘어나는 시대이다.
신세계의 SSG광고는 처음부터 누리 꾼들이 브랜드가 제공하는 콘텐츠를 공유하고 자발적으로 확산시키는 동기를 만드는 전략으로 제작 했다. 고객이 공유하고 싶어 하는 맥락은 두 가지다. 내용자체가 아주 재미있을 것, 그리고 콘텐츠 공유를 통해 내가 돋보일 것. SSG의 광고는 촌스러운 듯 세련됐고, 병맛 같지만 고급스럽고, 지루한가 싶더니 재미있다. 이런 양면성이 소비자들의 맥락과 맞아 덜어져 파급효과가 강렬했다. SSG의 광고는 유튜브에서 자발적으로 검색해 시청하는 사람이 100만명을 넘어섰다. 그리고 이후에도 수많은 패러디를 양상 해냈다. 우리와 같은 광고 제작사 HS애드가 만들었다고 하는데, 왜 다른 것일까. 상품이 과잉인 시대에 상품의 본래 기능을 강조하는 것, 즉 필요를 소구하는 것은 효과가 없다고 저자는 말한다. 레스토랑이 맛을 강조하거나, 서점이 보유 서적의 방대함을 자랑하는 것처럼 하나 마나 한 이야기는 없다. 우리의 브랜드는 어떤 제안을 담고 있어야 할까.
맥락을 수용하는 집단을 해석하라
이보다 더 좋을 순 없다고 생각했는데 또 한번 더 좋아진다. 지나치다 싶을 정도로 다양한 메뉴와 옵션, 앱이나 전화로 간단히 끝나는 주문. 그리고 30분 만에 따뜻한 상태로 도착하는 피자. 피자 배달이 이정도면 완벽한 것 아닌가? 이 상태에서 더 좋아진다는 게 가능할까? 이렇게 생각한 순간, 피자배달 스타트업 줌이 등장했다. 2015년 미국 캘리포니아에 설립된 줌은 로봇이 만든 피자를 저렴하게 제공하는 피자 배달 업체다. 가장 기대되는 부분은 이들이 준비 중인 배달하면서 굽는 트럭 배달 서비스이다. 이들이 만든 트럭에는 로봇과 오븐이 탑재되어 있어 주방을 통째로 넣은 것과 마찬가지다. 주문을 받으면 출발부터 하고, 조리는 나중에 시작한다. 트럭 안에서 도착 예상 시간 3분 15초 전 로봇이 피자를 굽기 시작한다. 도착과 함께 피자 조리가 끝나고, 고객은 그야말로 갓 구운 피자를 먹게 된다. 매장이 아니면 누릴 수 없던 맛을 제공하니 그야말로 혁신이다. 고객 경험이란 그런 것이다. 완벽하다 싶은데도 또 혁신하고, 혁신하면 당연했던 현재가 불편한 과거가 된다. 그렇게 아직 혁신하지 못한 경쟁자를 과거로 보내 버린다. 그래서 고객 경험 혁신은 마케팅의 가장 강력한 무기다.
아무리 좋은 브랜드 기획이 있고, 멋진 디자인이 있다 하더라도 이것들은 단지 하나의 구슬에 불과하다. 구슬은 소비자가 경험을 통해 그 브랜드를 받아들이는 순간 꿰어진다. 그렇게 실제 삶으로 투입되는 순간, 모든 것이 결판 난다. 고객의 삶의 모든 경험은 여전히 온라인보다는 오프라인에서 이루어진다. 그 비중도 아직은 오프라인이 더 크다. 지금까지 많은 기업들이 브랜드 경험에 포커스를 맞추는 동안 공간에 대해 계속 고민했다는 점에 주목하자. 결국 브랜드오 관련된 경험의 모든 접점은 브랜드를 둘러싼 공간의 영향을 받게 되어 있다. 따라서 다양한 브랜드들은 브랜드 경험을 위해 오프라인 공간 설계에 특히 공을 들인다. 이마트의 일렉트로마트, 현대백화점 판교점, 교보문고 광화문 점으로 발길이 줄줄이 이어진다. 온라인 서점의 대명사였던 아마존도 오프라인 서점을 열었다. 한동안 패러다임의 무게중심을 가져갔던 온라인의 발달이 아이러니하게도 오프라인의 새로운 경험을 강화시키고 있는 것은 우연이 아니다. 중국 마윈의 알리바바 그룹은 중국 광군제 하루 만에 28조원의 매출, 14억의 주문을 전 세계에서 발생시켰다. 알리바바는 온라인에서 오프라인으로 시장을 확대하고 3킬로미터 이내는 주문 후 단 30분안에 배송을 완료하는 시스템을 구축했다.
온라인의 방대한 제품, 저렴한 가격, 편리성에 대항할 수 있는 무기로 경험이 경쟁력을 갖추기 위해서는 차별회된 경험 제공이 필수적이다. 일본 다이칸야마의 츠타야 서점이다. 츠타야서점은 한국의 오프라인 유통기업에 적잖은 자극을 주었다. 온라인 유통에 맞설 수 있는, 아니 온라인 유통이 구현할 수 없는 오프라인에서의 경험을 보여 주었기 때문이다. 구색, 가격, 편리성을 버리고 츠타야가 선택한 무기는 가치제안이다. 책의 양은 많지 않지만, 책을 통해 라이프스타일을 발견할 수 있도록 선별된 책을 새로운 방법으로 진열한다. 이름은 서점이지만 라이프 스타일을 발견하게 해줄 모든 것이 있다. 요리책 옆에는 요리 재료와 도구가, 여행서 옆에는 여행사가 있는 식이다. 한국의 오프라인 유통도 많은 제품을 획일적으로 분류 전시하던 방식을 버리고 라이프 스타일 등 가치제안을 따라 공간을 변화시키고 있다. 그간 소규모 편집숍이나 플래그십 스토어에서 해오던 큐레이션이 확산되고 있는 것이다.
국내 편의점 시장에서 가장 높은 점유율을 가진 CU는 공격적인 로컬화를 통해 탁월한 적응력을 보였다. 특히 입지 특성에 맞추어 특화서비스를 시도했다. 대학가에 위치한 점포에 학생들을 위해 문서출력, 복사서비스를 제공하고 밀집 지역에는 점심식사 공간과 안마의자 등 편의 시설을 선보인다. 여학생들을 위한 파우더 존을 마련하는 등 다양한 아이디어로 이 시대 편의의 경험을 확장해 나가고 있다. 오프라인 매장은 단순히 판매만을 위한 곳이 아니라 고객에게 더욱 개인화된 서비스를 제공하고, 그 과정에서 브랜드의 진솔한 이야기를 전하기 위한 공간이다. 앞으로도 공간에서의 브랜드 경험에 기반을 둔 커뮤니케이션은 더 큰 영향력을 발휘할 것이다. 사람들은 단지 물건이 아니라 실제 삶에서의 경험과 스토리를 사고 있기 때문이다. 분명 온라인의 시대다. 그러나 오히려 다시 오프라인을 주목해야 할 이유가 생겼다. 결국 고객이 누리는 실제의 삶은 오프라인에 있다는 사실 때문이다.
스타벅스 국내 1천호점이 청담동에 오픈했다. 1999년 이화여자대학교 앞 1호점 오픈 이후 17년 만이다. 자연스럽게 리뉴얼 된 공간, 원격 매장 주문 사이렌 오더 같은 디지털 결합 서비스, 진동벨이 아닌 직원이 직접 음료명과 고객을 육성으로 부르는 아날로그 호출, 한정판 시즈널 MD 상품, 연말 다이어리의 매력 등이 그렇다. 하지만 가장 탐나는 것은 스타벅스의 DNA, 제3의 공간이라는 그들의 개념설계다. 스타벅스는 혼자 그리고 여럿이 오랫동안, 편하고 멋지게 시간을 보내기에 매우 적합한 곳이다. 그들은 단순히 커피라는 제품을 팔지 않는다. 편안하고 즐거운 시간을 보낼 수 있는 공간을 판다. 오프라인은 온라인에서 경험할 수 없는 시각적 만족과 새로운 제안이 충분히 어필되기 때문에 오프라인의 가치는 빛이 난다. 편리와 속도가 지배하는 온라인 시대를 사는 소비자들의 오프라인 경험은 점점 더 특별함으로 향할 수밖에 없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