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쓰기 능력이 이렇게 중요한데, 논술세대도 아니고 공대생이다 보니 많이 부족하다.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닥치는 대로 책을 읽는 방법뿐이었다. 강원국, 유시민, 윤태영의 글쓰기는 실질적이고, 기초적인 글쓰기 가이드가 되어주었다. 이전의 글쓰기 책들은 다소 난해하고, 기초보다는 중상급 대상자들의 글쓰기에 적합한 내용들이었다. 글을 쓰고 나면, 다듬는 것이 필요한데, 이 책은 그런 면에서 좋은 가이드가 되어줄 것으로 기대가 된다. 사람에게는 촉이라는 것이 있는데, 이 책은 도움이 될 것이라는 감이 있다
글에도 앵글이 있다, 촉을 키우자
글을 작성할 때는 캐리커처 그리듯 특징을 포착해야 한다. 선택과 집중을 통해 선택되지 않은 나머지를 버리거나 소략하게만 표현해 전달력을 최대한 높여야 한다. 전달하고자 하는 모든 정보를 열거하는 것보다 주요 내용에 힘을 주고 나머지는 가볍게 다루는 강약조절이 메시지를 더 두드러지게 한다. 캐리커처 그리듯 특징을 포착한다는 것은 키워드를 뽑아내 그 단어로 엮는다는 것이다. 즉, 쓰는 단어를 묘사할 핵심 단어를 무엇으로 할지 정하라는 말이다. 그 핵심 단어는 제목에도 활용할 수 있다. 인물 소개를
할 때 앵글을 잡아 작성하면 인물의 특징을 효과적으로 전달할 수 있다. 익숙한 인물의 예시가 소개되어 있어 인용해본다.
(원문) 기자가 되기를 바랐던 여대생이 은행원이 되었다. 입행 동기 중 여성은 손에 꼽히는 정도였는데 35년이 흐른 후 우리나라 최초의 여성 은행장이 됐다. 은행 내 생활은 평탄했다. 정적이고 세심한 성격은 은행 업무에 딱 맞았고 은행 내에서는 늘 여성최초라는 수식어를 달고 다녔다. 우리 사회에 아직 가부장적 잔재가 남아 있는 탓일까. 우리나라에서 높은 지위에 오른 여성들 중에는 남성성을 차용한 이들이 많다. 그런 면에서 권 행장은 남달랐다. 그를 만나본 이들은 권 행장의 장점으로 섬세함과 온화함 같은 여성성을 꼽는다. (이하생략)
(수정) 우리 사회에 아직 가부장적 잔재가 남아 있는 탓일까. 우리나라에서 높은 지위에 오른 여성들 중에는 남성성을 차용한 이들이 많다. 그런 면에서 권선주 기업은행장은 남달랐다. 그를 만나본 이들은 권 행장의 장점으로 섬세함과 온화함 같은 여성성을 꼽는다. 권행장은 일처리도 꼼꼼하기로 정평이 나 있다. 그 자신도 이 점을 중시한다. 그는 행장 내정 직후 기자와 만난 자리에서 “진정한 디테일은 사고의 촘촘함을 바탕으로 집중력을 발휘하는 것”이라며 “디테일에 강한 행장으로 기억에 남고 싶다”고 말한 바 있다. (이하생략)
남과 다르게 보는 첫걸음, 앵글을 잡는 건 달리 보는 것이다. 소설가 전상국은 ‘전상국의 즐거운 마음으로 글쓰기’에서 “다른 이들도 그 정도는 이미 다 알고 있는 그저 그렇고 그런 내용, 누구나 금방 떠올릴 수 있는 뻔한 생각을 가지고는 좋은 글이 될 수 없다”라며 “남들이 보지 못하는 것을 볼 수 있어야 한다”라고 말한다. 글을 차별화하는 요소가 남다른 안목, 독창성이라는 뜻이다. 이어령도 자신의 창의력의 원천과 관련해 “서로 다른 현상에서 같은 점을 찾고, 같은 현상에서 다른 점을 찾으려 했다”라고 들려줬다. 독창적이거나 창의적인 아이디어는 사물을 바라보는 각도를 이리저리 바꿔가며 많이 생각하는 가운데 떠오른다. 또는 현상을 뒤집어 보는 접근법이나 남들이 별로 관심을 두지 않는 작은 것들을 눈여겨 보는 것도 도움이 된다.
글을 잘 쓰는 방법으로 관련이 없는 두 가지를 이어보는 것이 있다. 예를 들어 치과의사와 TV사회자를 잇는 것이다. 둘은 전혀 다른 분야의 직업이다. 공통점을 찾은 뒤 차이점을 강조하거나 상이한 두 가지에서 공통점을 찾아내는 것은 유용한 글쓰기 기술이다. 치과의사와 TV방송 사회자는 둘 다 자신이 바로 뒤에 할 일을 알려준다는 공통점이 있다. 치과의사는 “물입니다, 솜입니다”와 같이 TV방송 사회자는 “제가 한번 먹어보겠습니다, 제가 먼저 들어가 보겠습니다”와 같이 말한다.
가능하면 단도직입, 도입부가 좌우한다
러시아 작가 안톤 체호프는 “대개 초보는 스스로 말하듯 독자를 바로 이야기로 이끌기 위해 노력한다”며 “대개 결과는 그 반대가 된다”고 조언한다. 즉, 이야기를 절반으로 접은 뒤 앞의 반을 찢어 버리라는 것이다. 글을 쓸 때는 독자를 가장 끌어들일 법한 대목을 맨 앞에 배치해야 한다. 눈썰미가 있는 독자는 도입부에서 글 쓴 사람의 공력을 가늠한다. 글의 플롯이 뛰어난지는 앞부분만 읽어보면 어느 정도 판단이 가능하다. 도입부가 좋았다가 흐지부지 되는 작품은 있지만 도입부가 별로인 작품 중 성공하는 건 없다. 도입부가 강력한 영화에 마크 웹 감독의 500일간의 썸머가 있다. “본영화는 허구이므로, 생존해 있거나 사망한 사람과 어떤 유사점이 있다고 해도 순전히 우연일 뿐입니다.” 두 번 째 한마디는 관객의 허를 찌른다. “특히 너, 제니 벅맨”, 세 번째 컷으로 감독은 호기심의 안테나를 세운 관객을 빠져들게 한다. “썅놈”
제목은 글의 주제가 아니라 글의 결론을 가리켜야 한다. 예를 들면 ‘유익균이 인체건강에 주는 혜택’보다는 ‘조금 지저분하게 살면 면역력이 5배 좋아진다’가 낫다. 제목은 글의 내용 전체를 아우르지 않아도 된다. 제목은 글에서 하나만 꼽으라면 택할 대목을 강조해도 된다. 독자는 바쁘다. 실제로는 바쁘지 않더라도 한 콘텐츠에 관심을 지속하는 시간이 짧아졌다. 스마트폰 시대엔 수많은 정보가 우리 곁에 대기하고 있다. 이는 제목을 어떻게 달고 글을 어떻게 내놓을지 궁기해야 하는 이유이자 가급적 두괄식으로 논지를 전개해야 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미괄식 글은 사례나 논리를 하나씩 추가하면서 독자를 결론이나 주장으로 이끈다. 독자가 결론이나 주장에 이르기까지 시간이 걸린다.
선택해 집중하고 생략하라
저자는 기자출신 답게 캐리커처를 그리듯이 글을 작성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특징을 잡아 그 점을 강조하되 나머지는 과감히 생략해야 한다는 것이다. 너무 많이 보여주면 실패하게 된다. 영화평이나 책의 서평도 전체 내용을 알려주게 되면 그것은 스포일러가 되어버린다. 독자의 관심도 감소시킨다. 전체를 요약하는 것은 오히려 누구나 할 수 있다. 전체 요약을 압축하는 훈련을 반복하게 되면 글을 다루는 솜씨가 좋아지게 된다.
예를 들어 넷플릭스가 영화산업의 강자로 부상하는 이야기도 여러 각도에서 풀어낼 수 있다. 책과 보도자료는 보통 시간 순서로 전개한다. 저자는 넷플릭스를 빅데이터가 선도한 스트리밍의 등장을 꼭지로 잡았다. 빅데이터 대신에 스트리밍을 중심으로 넷플릭스의 성장을 설명해도 좋다. 스트리밍 방식의 콘텐츠 유통에 따라 영상산업이 어떻게 변했는지 하는 관점을 맨 앞에 세워 이 책을 소개해도 좋다. 기업 사냥꾼이라고 불리고 고상하게 행동주의 투자자라고 불리는 칼 아이칸의 역할에 대해 언급해도 좋다. 칼 아이칸은 넷플릭스의 강적 블록버스터의 주요 주주가 된 뒤 경영진의 발목을 잡아 블록버스터가 퇴보하게 했다. 넷플릭스가 블록버스터를 물리치는 데에는 적진에서 활약한 아이칸이 큰 도움을 줬다. 이를 행동주의 투자자가 자신의 지분과 투자한 회사의 가치를 떨어뜨린 실패 사례로 언급할 수도 있다.
초점에 따라 다양하게 넷플릭스를 소개할 수 있고, 이렇게 재구성 된 서평에 따라 독자는 자신의 관심사와 일치하는 부분을 책을 통해 읽어볼 수 있다. 선택적으로 책을 읽게 된 독자는 전체 내용을 더 체계적으로 파악할 수 있다.
끝을 끝내주게, 혹은 여유 있게 마무리하기
글의 처음 못지않게 끝도 중요하다. 끝이 중요한 이유는 처음의 그것과 다르다. 첫 부분은 아무것도 없는 상태에서 독자를 끌어당겨야 하는 중책을 맡는다. 끝부분은 내용을 전부 혹은 거의 다 얻은 뒤 떠나는 독자를 대상으로 한다. 독자를 붙들 수는 없더라도 잠시라도 그를 머물게 하거나 떠난 그의 뇌리에 남는 메시지 혹은 음미할 만한 느낌을 주는 마무리면 좋다. 떠나보내되 떠나보내지 않는 종결부를 어떻게 지어내야 할까.
플롯을 짤 때 무엇으로 시작하지 고심하되 끝은 열어놓는 편이 좋다고 저자는 말한다. 독자에게 한 방 먹이는 펀치라인은 글을 쓰는 동안 떠오르는 때가 많기 때문이다. 마지막 문장을 미리 정해놓을 필요는 없다. 글감이 머릿속에서 발효되면서 걸맞은 마침표가 만들어진다고 믿어도 좋다. 색다른 마무리를 시도하는 것도 좋다. 궁금함을 유발하면서 끝을 맺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익히 알려진 좋은 구절을 인용하면서 글을 시작하는 것처럼 인용으로 글을 끝맺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두루 공유할 가치가 있는 글이라면 아직 덜 알려졌더라도 인용할 수 있음은 물론이다. 무릇 좋은 글은 몇 번이고 다시 읽어도 좋은 법이다.
이 책은 기자출신인 저자가 오랜 시간 글을 작성하면서 경험한 노하우를 정리한 내용으로 구성되어 있다. 그래서인지 실질적이고 활용 가능한 구체적인 사례들이 풍부한 예시문과 함께 소개되어 있다. 좋은 글을 많이 읽을수록 글쓰기 능력이 향상된다고 한다. 다만, 우리가 읽은 글이 좋은 글인지를 확인하기 어렵기 때문에 글쓰기 능력 향상이 어려운 것이다. 수정 전 후의 예시 글을 읽으며 어떤 글이 독자의 이해도를 높이고, 관심을 이끌어낼 수 있는 좋은 글인지 알 수 있어 실질적인 도움을 받을 수 있는 책이었다. 실제 다양한 부서의 자료를 보게 되면 사람에 다라서 글쓰기 역량에 매우 큰 차이가 존재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나의 글이 미흡함을 바라보며 갈길이 먼다는 것을 다시 한번 깨닫는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