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진영 에세이, 무엇을 위해 살죠
JYP가 궁금해서 내돈내산책
JYP 엔터테이먼트의 대표, 박진영씨가 에세이를 출간했다. 누군가의 에세이를 읽은 건 정말 오랜만이다. K-POP에 관심이 많기도 하고 일전에 JYP가 출연했던 오디션 프로그램에서 그에 대해 강렬한 인상(디테일한 분석, 철저한 이론지식, 인성 강조 등)을 받았었기에, 그가 어떤 생각을 하며 살아가는 사람인지 궁금했었다. 에세이가 나오자 바로 구매해서 읽었다.
개인적으로는 연예인의 삶을 자세히 들여다보는 과정이 흥미로웠고 생각할 거리를 많이 만들어주는 책이었다는 점에서 좋았다. 다만, 기독교 신앙 관련 내용이 많아 해당 종교가 아닌 독자의 경우에는 어떻게 받아들일지 궁금하다. 다행히(?) 본인은 기독교여서 거부감 없이 읽었고 삶의 목적에 대해 다시금 생각해볼 수 있는 좋은 기회가 되었다.
책의 구성
책 내용은 크게 두 파트로 나뉜다. 에세이답게 초반부부터 40% 가량은 성장과정과 댄서, 가수, 사업가로 살았던 2009년까지의 인생 궤적을 담았고 나머지 60%는 책 제목의 고민에 대한 답을 본격적으로 찾기 시작한 2010년부터의 이야기를 실었다. 책을 읽어보면 이 60% 분량의 내용을 이야기하고자 저자가 책을 출간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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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첫 페이지) 이 책이 허무하고, 쓸쓸하고, 외롭고, 불안하고, 두렵고, 우울한 누군가에게, 그리고 무엇보다도 삶을 포기하려고 하는 누군가에게 살아야 할 명확한 이유를 줄 수 있길 간절히 바란다. |
(발췌)
초등학교 시절, 인생의 목표가 정해지다
초등학교 때 나는 내 인생의 목표가 정해졌다. 이 목표는 40살까지 나를 지배해버렸다. 그 목표는 바로 사랑이었다. 남들에게 사랑이 막연한 환상이라면, 나에게는 꼭 이뤄야 하고 또 이룰 수 있다고 믿은 환상이었으며, 단 하나의 유일한 목표였다. 이 목표를 이루기 위해서 나는 반드시 정말 특별하고 멋진 남자가 되어야 했다. 난 불행히도 이 확신이 40살 때까지 한 번도 변하지도, 흔들리지도 않았다.
20년 뒤를 보자
<날 떠나지마>가 모든 순위 프로그램에서 1위를 하면서 나는 전국민이 아는 스타가 되어버렸다. 나는 점점 더 신이 났다. ‘세상에서 가장 특별한 사랑’을 하고 싶다는 꿈을 잃어버렸다 되찾았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그 꿈의 여주인공은 이미 내 곁에 있었다. 그래서 나는 가수 중에서도 최고의 가수가 되고 싶었다.
그런데 문제가 생겼다. 소속사 사장님이 날 부르더니 여자친구가 있다는 사실을 숨겨야 된다고 했다. 나도 고민을 해보았지만, 아무리 우리의 미래를 위해서라고 해도 지금 그녀와의 하루하루의 행복을 희생하기는 싫었다. 그래서 나는 여자친구가 있다고 말을 해버렸다. 심지어 거기서 한 걸음 더 나아가, 2집 타이틀곡으로 <청혼가>라는 곡을 발표했다. 그러자 앨범 판매량은 주춤했고, 방송국과 공연장을 찾아오던 팬들의 수도 급격히 줄었다.
나는 10년 뒤, 20년 뒤를 생각하기로 했다. 그때는 어차피 열성팬 경쟁이 아니라 실력 경쟁이 될 테니, 미리 미래를 준비해야겠다고 생각했다. 20년 뒤에 최고의 위치에 오르기 위해 나는 몸 관리, 춤 연습, 노래 연습, 음악 공부를 매일 할 수밖에 없었고, 다른 가수들이 놀 때, 쉴 때, 잘 때 노력해야 한다는 생각으로 시간을 아껴 썼다.
결혼
사람들에게는 결혼이 성공으로 가는 과정일지 모르겠지만 나에게는 성공이 결혼으로 가는 과정이었다. 내 나이 28살, 난 내 인생의 궁극의 꿈이었던 ‘최고의 여자와 최고의 사랑’을 이루었다. 난 이상형의 여자와 결혼했고, 경제적으로 풍요로웠고, 내 분야에서 인정받는 사람이 되었다. 압구정동과 청담동에 내 집과 회사 사옥도 생겼다. 그것은 내가 꿈꾸던 ‘특별’ 그 이상이었다.
그런데 결혼 후 시간이 조금씩 흘러가면서 난 당황하기 시작했다. 그녀와 결혼하면서 내 가슴을 꽉 채웠던 행복이 오래된 풍선처럼 조금씩 쪼그라들기 시작하는 것이었다. 28살까지 확신을 가지고 좇았던 목표와 현실 사이에 차이가 생기기 시작하자 나는 그것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지 몰랐다. 해결책을 몰랐던 나는 일에 더욱더 매진하기 시작했다. 나 자신을 몰아붙였고 점점 더 벅차고 힘든 일들에 도전하게 되었다.
미국진출 실패, 그리고 운
K-pop의 미국 진출이라는 나의 꿈이 산산조각 났다. 5년 동안 준비해온 계획이 무너졌는데, 길이 보이질 않았다. 당시로서는 회사를 휘청이게 할 정도의 큰 금액을 날려버렸다.
생각해보니 운이라는 것이 인생에서 너무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었다. 평화로운 대한민국에서 태어난 것, 화목한 가정에서 자란 것, 건강한 신체와 정신을 가진 것, 예쁜 피아노 선생님을 만나 피아노를 열심히 친 것 등... 생각해보니 끝이 없었다. 어느 하나만 주어지지 않았어도 나는 성공하지 못했을 텐데, 왜 내 성공이 내 노력만으로 되었다고 생각하고 있었을까? 이 정도 일을 당하고 나서야 알게 되었다. What is ‘luck’? 나는 답을 찾아야만 했다.
이혼
미국 진출의 실패는 애써 내가 외면하고 있던 문제를 다시 마주하게 했다. 바로 결혼생활이었다. 완전하고 영원한 행복을 줄 거라고 믿었던 내 결혼이 나를 완전히, 영원히 채워주지 못한다는 사실에 당황스러웠다. 결국 난 어린 시절부터 일관되게 꿈꿔왔던 내 꿈을 산산조각 내버렸다.
그 뒤로는 쾌락으로 마음의 빈 공간을 채우며 살았다. 클럽과 파티로 하루하루를 살았다. 몇 년이 지나자 내 마음속 빈 공간은 이혼 전보다 오히려 더 커져버렸음을 알았다. 외롭고 허전했다. ‘특별한 사랑’이 내 삶의 목적인 줄 알았는데 수단이었다. 내 꿈은 이기적인 나의 ‘완전하고 영원한 행복’이었다. 난 새로운 수단을 찾아봐야 했다. 그 때 떠오른 건 기부와 자선활동이었다. 아무도 모르게 열심히 해보았지만 그 역시도 내 빈 공간을 채워주지 못했다.
나는 처음으로 무얼 하고 싶은 것이 아니라 알고 싶었다. 더 이상 할 수 있는 게 없어지자 그제야 알고 싶어졌다. ‘난 뭘 위해 살아야 하는 걸까?’
믿기로 결심하다(2012)
우리가 왜 태어났는지, 죽음 뒤엔 무엇이 있는지, 내가 찾고 있던 것에 대해 정말 많은 사람들이 종교와 철학의 이름으로 답을 제시해놓았다. 하지만 내가 찾고 있던 건 나와 같은 한계를 가진 인간의 대답이 아닌 전지전능한 창조주의 대답이었다. 만일 그런 창조주의 확실한 증거를 찾지 못한다면 그냥 내 생각대로 다시 살아갈 생각이었다.
우선 종교 경전 중 창조자가 등장하는 책을 찾아봤다. 여러 책을 비교해보며 공부해보려고 했었는데, 너무나 신기하게도 우주와 인간을 만든 창조자가 등장해서 그것을 왜, 어떻게 만들었는지 자세히 써놓은 책은 성경 한 권밖에 없었다. “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시니라-창세기 1장 1절” 창조자를 찾고 있던 나에게 이 구절은 강렬하게 다가왔다.
성경 공부를 본격적으로 시작하면서 내가 깨달은 것이 있었다. 그 전에는 오해했던 내용인데, 사람들은(나도) 죄가 ‘많고 적고’ 혹은 ‘크고 작고’를 가지고 선악의 기준을 삼지만 하나님의 기준은 죄가 ‘있고 없고’라는 사실이었다. 나를 가로막고 있던 오해가 풀리면서 2010년부터 2년간, 나는 본격적으로 성경을 집요하게 파고들기 시작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