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애를 잘하고 싶나요? '너와 나의 간격 1미터'

작성자 다오니스트
출간일 2020-09-16

 

 

이 책은 힐링 상품이 아니다. 위로 따위는 없다. 이 책은 삶에 대한 회의가 생존본능마저 앞지르는 정도까진 아닌 사람들을 위한 책이다. 이 책의 내용은 철학자 스피노자의 삶과 사상을 글쓴이가 연구하고 이해한 방식으로 풀어낸 결과이다.

 

분노를 키우지 말고 그저 이해하라.

그 노력이 미덕의 처음이자 전부다.”

바뤼흐 스피노자

 

반경 1미터는 우리가 고유한 자기 자신으로 살아가기 위해 세상과 남의 침범을 막아내야 하는 거리다. 연애는 1미터 거리에서 서로를 마주보며 거래하는 행위다.

 

연인과의 다툼은 상대에 대한 실망보다도 자신의 바닥이 훤히 드러나서 괴롭다. 1미터 안에 꽤 괜찮은 내가 있는 줄 알았는데, 초라하게도 속 좁은 동물만 있을 뿐이다. 사랑을 과대평가하기 때문에 자괴감과 연인에 대한 배신감이 커진다.

스피노자는 처음이자 마지막 사랑으로부터 실연당하고 평생 독신으로 살았다. 스피노자는 실연한 다음 연인을 비난하지도, 그 선택에 분노하지도 않았다. 스피노자에게는 안락한 생활보다도 철학자가 되어야겠다는 욕망이 있었고, 클라라에게는 부잣집 사모님이 되어야겠다는 욕망이 있었다. 둘 다 동등하게 자신의 욕망대로 행동했을 뿐이다.

타인의 욕망을 비난하기는 쉽다. 도덕적 우월감을 주니 재미있기까지 하다. 범죄행위로 실행되지 않는 한 나는 나의 욕망에 비난받지 않을 권리가 있다. 욕망에는 의무가 없다.

연인에게는 자기 1미터 반경의 영지를 나의 욕망에 등기이전해줄 의무가 없다. 그녀가 돈만을 중요시하는 속물이라 하더라도, 그것은 자기 반경 1미터 사유지의 사정이다. 이를 인정하면 마음속에서 피어나는 미움에 시달릴 필요가 없다.

 

사랑에는 도덕을 적용할 수 없다.

 

사랑은 비도덕적이다. 반도덕적이라는 말과는 다르다. 비도덕은 도덕적이지 못하다는 게 아니라 도덕과 상관이 없다는 의미다.

인간은 타인의 욕망이 자신의 욕망을 배신할 때 상대를 비난하는 습관을 갖고 있다. 비난을 정당화하기 위해 상대의 도덕성을 흠잡는다. 내가 상처를 받는다고 자동적으로 상대가 부도덕한 사람이 된다는 공식은 없다. 상대방에 비해 자신의 사랑은 순수할 것이 틀림없으므로, 우리는 상대보다 우월한 도덕적 권위를 확보했다고 착각한다.

사랑을 순수하고 영원한 가치로 여기는 버릇은 현대인의 대표적인 오해 가운데 하나다. 사랑은 현대인의 종교이자 우상이다.

 

사랑은 어쩌다 현대인의 우상이 되었을까?

 

핵심에는 연애결혼 문화가 있다. 불과 200년 전까지 연애는 특권층의 전유물이었다. 절대 다수는 부모의 의지에 의해 결혼했다. 부모가 아니더라도 사회적 명령을 받아 결혼을 했다. 지금은 자유연애를 이상하게 여기지 않는 현실 덕에 거의 무한한 선택지가 펼쳐져 있다. 결국 사랑에 대한 환상은 자유의지에 대한 환상이자 자기애이다. 오롯이 나의 선택이므로 영원하고 순수하고 숭고해야 한다는 믿음이다. 이를 뒷받침하는 좋은 증거가 바로 결혼정보회사를 통해 성사된 결혼은 자랑스럽게 생각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현대의 수많은 소설과 영화 속에서 목숨까지 바쳐가며 사랑을 지키는 주인공을 보여주면서 사랑이라는 단어만큼은 지키지 않으면 안 될 것으로 묘사한다. 현대인은 사랑 자체를 사랑하는 나머지 정작 상대와 나를 사랑하는 법은 외면한다.

 

사랑의 정체는 타인을 사랑하는 자신에 대한 사랑이다.

 

자신의 자유의지를 신성시하는 현대인에게 사랑은 숭고한 것이어야만 한다. 지나친 자기애는 자기애를 방해한다. 연애에서 우리는 상대에게 도덕적 책임을 전가하기 위해 일부러 배신감을 느끼고, 자신은 되도록 피해자의 지위를 차지하려 한다.

내 사랑은 순수했지만 알고보니 타락한 너는 내 사랑을 누릴 자격이 없었다는 논리이다. 그리고 다른 사람보다 깊고 진지한 사랑을 주는 나의 모습에 심취한다.

연애는 욕망의 거래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이제 우리는 자신의 이익을 위해서 연인을 만난다는 사실을 인정해야 한다. 거래의 목적을 분명히 인지해야 이윤을 창출할 수 있다.

 

연애의 목표는 사랑이 아니라 행복이다.

 

이것이 우리가 추구해야 할 목표의 전부다. 반면 영원한 사랑처럼 추상적이고 관념적인 가치는 매번 우리를 속이려고 안간힘을 쓴다. 속지 않고 살기 위해 우리는 삶이란 무엇인가를 먼저 이해해야 한다. 우주에게는 특별히 나를 신경 써줄 마음이 없다. 우리 각자는 그 누구도 세상의 중심이 아니다. 나는 당신에게, 당신은 내게 특별한 존재가 되기로 약속한 적은 없다. 존재에는 이유가 없다. 존재 자체만 있을 뿐이다. 타인은 저마다 자신의 반경 1미터에 행복의 요소를 끌어오느라 바쁘다.

우리는 사명을 갖고 태어나지 않았다. 효자가 되기 위해서, 선량한 사람으로 자라기 위해서, 출세하기 위해서, 변치 않는 사랑의 주인공이 되기 위해서 태어나지 않았다. 우리가 태어난 목적지향적인 이유는 없다. 우리는 그냥 태어나기에, 살아 있다는 것은 하나의 상태이다. 억지로라도 이유를 끌어 붙여야 한다면, 우리는 행복하기 위해 태어났다. 사랑, 신념,이상 등 삶의 목적으로 꼽는 그 무엇도 사실은 이 행복을 위한 도구일 뿐이다.

 

사랑이란 인생의 하인이 되어야지,

주인이 되어서는 안 되는 법이다.”

너무 사랑해서 그랬다.”

 

사랑을 종교로 모시든, 핑계로 사용하든 삶 앞에 사랑을 놓을 때 인간은 사랑의 종이 되어 희생당한다. 1미터의 경계가 정확하지 못한 사람은 상대를 침공하거나 거꾸로 침공당한다.

 

내 인생이 불만족스럽다고 해서 놀랄 일이 아니다.

 

1미터의 경계선 안에 행복이 들어왔을 때 최대한 누리려면 행복이 어쩌다 찾아온다는 사실을 알고 있어야 한다. 사랑스러운 연인이라면 마지막 사랑인 것처럼 하루하루를 애정으로 가득 채우기 위해 최선을 다해야 한다. 아닌 게 아니라 정말로 마지막 사랑일 수도 있기 때문이다. 우주는 내게 또 다른 운명적 사랑을 점지해줄 의무가 없기 때문이다.

 

자수성가한 전문직 남성을 남편감으로 경계하라는 여성들의 목소리가 있다. 어려운 환경에서 자기 실력으로 우뚝 섰으니 남들보다 많은 노력을 했을 것이다. 윤리적 오류의 함정에 빠진 남성들은 지난 노력을 배우자가 바치는 헌신으로 보상받으려고 한다. 그는 다름 아닌 자기 자신을 위해 노력해왔다는 사실을 망각한다. 그리고 배우자를 위해서가 아니라 자기 자신을 위해 그 사람을 선택하고 결혼했다는 사실마저 망각한다. 결과는 자신에게도 불행으로 다가온다. 아내의 무임승차에 억울해하고 그가 얼마나 자신의 돈을 누릴 자격이 되는 현모양처인지 감시하는 데 감정의 에너지를 소모해야 하기 때문이다. 개인의 이익과 공적인 가치의 경계가 분명하지 않은 사람은 나의 행복과 타인의 행복이 분리되어 있다는 사실을 보지 못한다.

최근 유행처럼 퍼지는 위로 컨텐츠들은 하나같이 미래의 행복을 위해 현재의 행복을 유보하지 말라한다. 즉 미래의 행복을 위해 현재를 희생하면 자동적으로 현재가 불행해진다는 기계적인 사고다. 정답은 현재의 행복을 누리려는 노력과 미래의 잠재적 행복을 위한 투자를 병행하면 된다. 한 잔의 커피, 맑은 하늘, 가족이 건강하다는 사실, 좋아하는 음악, 사랑하는 사람의 존재 등 우리가 집중할 행복의 요소를 찾아 음미하면 된다.

행복의 기술은 간단하다. 1미터 밖에서 일어난 타인의 성공은, 나에 대한 세상의 배신행위가 아니라 풍경이다. 풍경은 반경 1미터 안의 사정과는 무관하다. 보고 싶으면 보면 되고, 그렇지 않으면 눈을 돌리면 된다.

내 수입이 늘거나 줄어든다고 내가 다른 사람이 되는 것은 아니다. 수입이 반으로 줄어든다고 해도 나는 여전히 나다. 1미터라는 독립된 울타리는 여전히 그대로 존재한다. 반경 1미터 내부로 흘러들어오는 조건이 바뀌었을 뿐이다.

 

연애란 거울을 보는 것과 같다.

 

사랑의 거래를 잘 하는 사람은 사랑을 주는 만큼 되돌려 받는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 물론 고통도 주는 만큼 받고 받은 만큼 준다는 등가교환의 법칙을 이해한다. 남을 자신의 일부라고 믿는 사람은 남을 개조하려고 한다. 이와 같은 부류의 사람들은 관계가 아니라 자기계발이나 성형을 하는 것이다. 이때 인격에 대한 이해는 전혀 없다.

그들에게 배우자는 꼼꼼히 살펴보고 주문한 기성품에 불과하다. 만남이 아니라 물건 값으로 자신의 삶을 지불한 구매이기에 배우자가 올바로 기능하지 못하면 울분에 찬다.

원하는 행동과 태도를 뜯어내기 위해 배우자에게 폭력을 행사한다. 남성은 완력으로, 여자는 언어로 끝없이 상대를 힐난하고 지인들을 상대로 험담한다.

 

사랑은 만남을 소중히 하는 데에서 시작한다.

 

만남은 내가 원하는 조건의 목록을 구비한 사람이 아니라, 다른 누구도 아닌 바로 여야 하는 이와의 마주침이다. ‘는 너 자체로 선물이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서로의 반경 1미터짜리 울타리를 인지하고 존중해야 한다. 이제 우리는 나만의 단단한 1미터를 구축해야 한다. 세상이 주는 억압에 자기만의 대처법을 선택해야 한다.

예를 들어 제사상 차리기에 순응하면 다음 명절까지 평화를 살 수 있다. 매일같이 상사와 마주 보는 상황의 불편함을 감수하면 월급이 들어온다.

 

모든 억압에 순응할 필요는 없지만,

그렇다고 모든 억압에 저항할 필요도 없다.

 

억압에 순응하면 나름의 행복과 고통이 1미터 안에 유입된다. 억압에 저항해도 행복과 고통은 서로 경쟁하듯 함께 들어온다. 갈림길에 섰다면 행복이 고통보다 큰 쪽을 선택하면 된다.

법치주의 국가에서, 유교문화권에서 우리는 자유로울 수 없다. 우리 중에 자유인은 없다. 자유인은 조금이라도 더 자유로워질 의지와 기술을 가진 사람이다.

자유인이 되기 위해서는 타인의 사고와 관념, 나의 욕망이 아닌 가치가 내부로 흘러 들어오지 못하게 막을 줄 알아야 한다. 민주주의, 정절, 사명감, 효도, 우정 등 다양한 가치를 따르고 싶은 욕망이 내부로부터 움직일 때에만 가치를 위해 행동하고 때로 희생하는 것이 행복의 기술이다. 아무리 숭고한 가치라도 나의 행복을 위해 존재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연애를 잘하고 싶은가요?

당신의 1미터는 성인가요 감옥인가요?

 

 

 

 

사랑 철학 스피노자 연애 1미터 간격 이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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