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말을 저렇게 하지?”
무조건 윽박지르는 상사나 솔직함을 핑계로 가슴에 비수를 꽂는 친구, 유독 아픈 말만 골라 하는 가족에게 ‘꼭 그렇게 말해야 하냐’고 따지고 싶을 때가 있다. 물론 우리도 지금껏 몇 번이나 말로써 사랑하는 이의 마음을 무너뜨리고 아끼는 사람들을 밀어냈을지 모른다. 어쩌면 어제 저녁에도 마음과 다른 말을 툭 내뱉고 돌아서면서 ‘너무 심했나...’ 하고 후회했을지도. 우리는 어른이 되어서도 여전히 ‘말’에 서툴다.
무심코 던진 말이라도 일단 입 밖으로 나온 말은 사람의 마음에 파장을 일으킨다. ‘그렇게 할 거면 그만두라’는 상사의 말에 밤잠을 설치고, ‘해낼 거라고 믿는다‘는 한마디에 힘이 나서 두 팔을 걷어 부친다. 말은 사람을 들었단 놨다 할 만큼 힘이 세다. 게다가 수명은 어찌나 긴지. 주름이 자글자글한 노인이 어린 시절 들었던 격려의 말을 추억하며 눈물을 흘리거나 장성한 아들딸을 둔 가장이 ’그때 왜 내게 그런 말을 했냐‘며 오래전 상처를 곱씹는 모습을 볼 때면 말의 질긴 생명력을 실감하곤 한다.
안타까운 것은 말 때문에 자책하거나 타인을 원망하면서도 여전히 자신의 잘못된 말 습관을 그냥 내버려 둔다는 데 있다. ‘내가 그렇지 뭘.’, ‘언젠가는 내 마음을 알아줄 거야.’ 이런 생각을 하며 애써 덮어둔다. 그러다가 빈번한 말실수 때문에 소중한 관계가 어그러지거나 직장에서 리더의 위치에 올랐을 때 혹은 부모가 되어서 아이를 이끌어야 할 때가 되면 그때야 말 잘하는 방법을 찾는다. 좋은 시도이기는 하지만 단기속성 기술은 정작 중요한 순간에 무용지물이 되기 쉽다.
지금까지와는 다른 말 습관을 지니고 싶다면, 말 그 자체에만 집중할 게 아니라 그 이면에 있는 나를 함께 들여다봐야 한다. 그럴 듯하게 말하려고 노력하는 대신 말을 만들어내는 저 깊은 곳, 말의 근원지인 자신의 내면을 알기 위한 노력이 필요하다. 혹시 유독 참지 못하는 말투가 있는가. 유독 가슴 아프게 다가오는 말이 있는가. 언어와 말투에 영향을 끼치는 심리적인 구조를 알고 나면 내가 왜 그런 말투를 사용하게 됐는지, 왜 특정한 말에 대해 예민하게 받아들이는지 알 수 있게 되고 비로소 자신의 말을 제대로 다룰 수 있게 된다.
습관적으로 팀원들을 비난하는 상사가 있다고 해보자. 칭찬기술을 달달 외운다고 그의 ‘말’이 바뀔까. 그보다는 자신의 내면의 특성, 말하자면 감정을 느끼는 방식이나 사람들을 바라보는 관점, 자라온 환경 등에 관심을 기울여야 한다. 그래서 어쩌다 지금 같은 말하기 패턴을 가지게 되었는지, 앞으로 무엇을 변화시켜야 하는지 알 수 있게 된다. 이 모든 변화의 과정을 ‘말 그릇을 키우는 과정’이라 표현할 수 있다.
사람들은 저마다 말을 담는 그릇을 하나씩 가지고 있다. 그런데 그 크기에 따라 말의 수준과 관계의 깊이가 달라진다. 일명 말 그릇이 큰 사람들은 누군가를 현혹시키고 이용하기 위해 혹은 남들보다 돋보이기 위해 말을 사용하지 않는다. 그보다는 타인과 소통하기 위해, 갈등을 극복하고 사람을 이해하기 위한 말을 사용한다. 너와 나의 차이를 자연스럽게 받아들이고 소통이 어려운 상황에서도 사람들과 대화를 지속할 수 있는 방법을 찾는다.
사람은 누구나 인정과 공감을 갈망한다. 성공과 욕망을 쫓다가도 결국에는 쉴 수 있는 품을 그리워하게 마련이다. 사람의 마음이란 목표를 달성하지 못했을 때도 비난 대신 그동안의 노력을 알아주길 바라고, 실수했을 때에도 다시 용기를 낼 수 있도록 기다려주길 바라고, 어려운 도전 앞에서 나의 능력을 의심하기보다 가능성을 믿고 응원해주기를 바란다. 따라서 그러한 욕구를 제대로 이해하고 있는 사람, 즉 말 그릇이 큰 사람 주변에는 자연히 사람들이 모여들게 마련이다.
말은 당신을 드러낸다. 필요한 말을 제 때 하고, 후회할 말을 덜하고 살았으면 좋겠다. 말 때문에 사람을 잃어버리지 않았으면 좋겠다. 말로 한 명이라도 더 살리고 키워낼 수 있으면 좋겠다. 당신의 말은 당신이 없는 순간에도 사람들의 마음속을 떠다닌다. 그러니 진정한 말의 주인으로 살아가기를, 무엇보다도 당신의 말 때문에 외로워지지 않기를 진심으로 바란다.
큰 말 그릇 vs 작은 말 그릇
큰 말 그릇
· 많은 말을 담을 수 있다
· 담은 말이 쉽게 세어나가지 않는다
· 필요한 말을 골라낼 수 있다
작은 말 그릇
· 말을 담을 공간이 없다
· 말이 쉽게 흘러넘친다
· 불필요한 말을 많이 한다
사람은 자신의 품만큼 말을 채운다. 말 그릇이 큰 사람들은 공간이 충분해서 다른 사람의 말을 끝까지 듣고 받아들인다. 조급하거나 야박하게 굴지 않아도 되기 때문에 ‘그게 아니라’, ‘너는 모르겠지만’, ‘내 말 좀 들어봐’ 하며 상대의 말을 자르고 껴들지 않는다. 오히려 ‘그랬구나’, ‘더 말해봐’, ‘네 생각은 어때’라고 하면서 상대방의 입을 더 열게 만든다. 사람마다 가지고 있는 ‘다름’과 ‘특별함’을 이해하고 있기에, 말 자체를 평가하거나 상대방의 말하기 실력을 비난하지 않는 것이다. 그리고 분명하게 말해야 할 상황에서는 물러서지 않는다. 정갈하고 정확하게 자신의 메시지를 전달한다. 필요한 순간에, 꽉 찬 말이 나온다. 약간 촌스러울지 몰라도 경박하지 않고, 화려하지 않아도 안정되어 있다. ‘끌리는 말’이란 바로 이런 것이다.
말에 책임을 진다는 것
이 책은 ‘왜 우리는 나이 들어서도 성숙한 대화를 하지 못할까?’에 대한 물음에서 시작되었다. 마흔을 넘기면 자신의 얼굴에 책임을 져야 한다는 말이 있다. 사람의 인격이 표정 안에 고스란히 새겨지기 때문이다. 말도 그렇다. 경험이 많아지고, 삶의 연륜이 더해질수록 말에 책임을 져야 한다. 세상에는 ‘몰라서’ 하는 말이 있고, ‘알면서도’ 하는 말이 있다. 그리고 나이가 들수록 ‘몰랐다’며 피해갈 수 있는 기회는 점점 사라진다. 어른이 되어 간다는 무게감에는 말에 대한 책임감도 포함되어 있다.
책임감(Responsibility)은 ‘Response+ability'의 조합으로 탄생한 말이다. 즉 반응할 수 있는 능력이라는 뜻이다. 말에 책임을 진다는 것도 관계에서 내가 무엇을 더 할 수 있고, 덜 해야 하는지를 판단하고 실행할 수 있다는 의미다. ’~ 때문에‘ 라며 원망하고 비난하는 것은 어린아이도 할 수 있다. 미숙한 아이들일수록 “다 너 때문이야!”라는 말을 자주 쓴다. 힘들고 곤란한 일을 받아들일 힘이 아직 없기 때문에 가장 가까운 사람에게 잘못을 떠넘기는 것이다. 그리고 이것은 말에 책임감을 느끼지 못하는 사람들이 선택하는 가장 본능적이고 쉬운 기술이기도 하다.
하지만 그들에게도 대화 내용을 녹음해서 들려주거나 주변에서 받은 피드백을 들려주면 “아, 제가 이렇게 말했군요. 그래서 상대방이 그런 반응을 보였네요.”, “맞아요. 저부터 변해야겠네요.”라고 받아들이는 경우가 있다. 말의 변화는 바로 그때부터 시작된다. 자신을 바라보고 절반의 책임을 받아들일 때 비로소 대화 능력은 바뀌기 시작한다. 그 과정이 선행되지 않은 채 말 기술만 배우면 말투가 달라졌다고 해도 어색하게 느껴질 뿐이다. 이해받으려 하기 전에 이해하기 위한 도구로써 말을 사용하는 것, 그리고 상대방의 인성과 성격을 탓하기 전에 자신이 그것을 담아낼 수 있는 그릇이 되는가를 돌아보는 것, 말의 수준이 높다는 것은 아마도 이 두 가지 법칙을 이해하고 있다는 뜻일 것이다.
모든 사람의 인생에는 저마다의 사연이 담겨 있다. 당신의 인생에는 어떤 사연이 담겨 있을까. 자신의 말 그릇 안에 담겨 있는 수많은 기억들을 꺼내어 보자. 각각의 기억을 햇볕에 말리고, 아직 꺼내보기 힘든 기억은 잠시 쉬게 놔두면서 천천히 자신과 만나보자. 그렇게 마주하고 나면 이제 당신의 마음과 당신의 말이 달라질 것이다. 그러고 나면 밖으로 나가 더 많은 사람들과 관계를 이어나갈 수 있게 될 것이다. 자신을 들여다보던 거울로 다른 사람을 비추면서, 말로 사람을 위로하고 안아줄 수 있게 될 것이다.
말을 바라본다는 것은 사람을 바라본다는 것이고,
사람에 대한 이해는 나 자신에서 출발해야 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