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은행원, 토비아를 지켜주는 대천사 라파엘처럼
“사정은 잘 알겠소. 돈을 빌려주지.
단 갚지 못할 경우에는, 당신의 살 1파운드를 받겠소!”
사채업자 샤일록에게 대출을 받으러 온 상인 안토니오는 “좋소”라고 대답한다. 예정대로 자신의 배에 실은 물건이 팔리면 돈을 갚을 수 있다. 그러나 우리가 잘 알고 있듯 안토니오는 돈을 갚지 못한다. 배가 돌아오지 못하고 침몰했기 때문이다. <베니스의 상인>에서는 동방으로 교역을 떠난 배가 돌아오면 대박, 그렇지 않으면 완전히 망하게 되는 상인들의 리스크를 잘 보여준다. 실제로 당시 배를 타고 나간 이들을 ‘리시카레’, 즉, 용기 있는 자들이라고 했는데, 이것이 RISK의 어원이기도 하다.
위의 그림은 안드레아 델 베로키오의 <토비아와 천사>라는 그림이다. 장님인 아버지를 대신해 빌려준 돈을 찾아오기 위해 여정을 떠나는 토비아를 대천사 라파엘이 지켜주는 내용이다. 당시 너도 나도 집에 토비아와 라파엘의 그림을 걸어 놨다. 해적과 적국의 함선들을 피해 여행을 거듭해야하는 상인들이 그림으로라도 여행길의 안전을 기원하는 절박한 마음에서다.
그때 이들의 리스크를 덜어주는 라파엘과 같은 존재가 등장했으니, 은행의 모태가 되는 ‘반코(Banco)’다. 이들은 넓은 교역로 마다 지점을 만들고 상인들에게 환어음 거래를 제공했다. 상인들은 부담 없이 다른 나라에서 무현금 거래가 가능해졌고 더 이상 배가 약탈당한다고 모든 것을 잃지 않았다. 이는 국제적인 환전, 결제 네트워크로 발전해 이탈리아는 물론, 런던 파리까지 반코가 진출하게 되었다.
2. 시간은 신의 것, 이자는 용납할 수 없다
중세 교회는 이자 취급을 용납할 수 없었다. 시간은 신의 소유물이며 시간이 지남에 따라 받는 이익인 이자또한 신의 것이었기 때문이다. 신이 아닌 인간이, 상인과 반코들이 이자를 취하는 것은 대죄였다. 하지만 상인들이 사업을 시작하려면 돈을 빌려야했다. 반코를 통해 리스크를 줄이는 것도 일단 사업을 시작한 상인들에게나 필요한 것이다.
이자는 금융의 핵심이라 할 수 있다. 당시 금융업에 종사하던 이들은 이 족쇄를 극복하기 위해 융자거래는 이자와 관계없다는 논리를 만들어낸다. 이자는 시간이 지남에 따라 파생되는 이익이 아니라 ‘다른 곳에 사용하면 얻을 수 있는 이득에 대한 보상’, 지금으로 따지면 기회손실과 같은 개념으로 말이다.
3. ‘(우기)부기’ 스타일!
중세 말기 르네상스를 통해 수량혁명이 일어났다. 오선보가 멜로디라는 형태가 없는 것을 가시화하는 기술이라면, 부기는 이윤이란 막연한 개념을 가시화 하는 기술이다. 오선보로 음악이 발전했듯이 부기는 상업이 황금기를 맞는데 크게 이바지 했다.
반코가 네트워크망을 늘려나갈수록 기록의 중요성도 커져갔다. 다른 지점에 기록을 정확히 전달해야했고 통일성이 요구되었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장부 부기기술이 탄생했고 반코 입장에서 상인을 평가할 수 있는 좋은 수단이 되기도 했다.
우리가 아는 재무상태표(Balance Sheet), 손익계산서(Income Statement)도 이때 나왔다. 책에서는 초기 재무상태표를 재현해 상인들이 사업을 시작하는 과정을 설명하면서 부기의 기본 개념들을 쉽게 서술하고 있다.
4. MEDICI: Masters of Account Book
은행하면 빠질 수 없는 가문이 바로 메디치 가문이다. 특히 메디치가문의 수장이었던 코지모 드 메디치는 메디치 가문의 반코가 번영할 수 있도록 기초를 쌓은 인물이면서 이탈리아의 문화예술을 부흥시켜 르네상스를 안착시킨 인물이기도 하다. 참고로 위 사진은 NETFLIX에서 즐겨보고 있는 <MEDICI, Masters of Florence> 드라마의 코지모 드 메디치의 역할을 맡은 배우의 포스터다.
메디치 가문이 반코사업을 처음으로 시작한 가문은 아니다. 이미 이전에도 바르디 가문, 페루치 가문이 반코에 뛰어들었으나 영국왕 에드워드 3세에게 빌려준 돈을 떼이고 파산해버렸다. 그래서인지 코지모는 귀족이나 권력자들에게 대출해줄 때 신중을 기했고 여신관리를 위해 장부를 보고 경영 상태를 읽는 능력을 중요시 여겼다.
당시 메디치가 지배하던 피렌체에는 Compania가 성행하고 있었다. 콤파니아는 지금의 Company와 비슷한 모습으로 상인 조직이나 조합, 출자자가 모여 동반자적 협력관계를 이룬 조직이었다. 상인들이 더 이상 일시적인 거래가 아니라, 지속적인 거래관계를 맺게 됨으로서 결산과 분배의 문제가 중요해졌다.
장부는 매우 유용했다. 매일 이익과 손해를 기록하면서 유량정보(손익계산서)를 제공하고 결산일 시점에는 재고조사를 실시, 재산의 내용을 파악해 객관적인 저량정보(재무상태표)를 제공했다. 이로서 이윤을 파악하는 일이 용이해졌으며 분쟁에 있어 대외적 증거로도 사용되었다.
나중에 메디치 가문이 몰락하는 원인도 여기에 있다. 코지모의 손자 로렌초 드 메디치 때 런던 지점, 브루게 지점은 제대로 된 심사 없이 영국왕 에드워드 4세에게 돈을 빌려줬다가 이를 회수하지 못해 파산한다.
5. 최초의 주식회사 VOC
종교개혁으로 신교도들이 늘어나자 카톨릭 지지자인 스페인 국왕 펠리페 2세는 이단 심문으로 이들을 탄압했다. 이에 프로테스탄트들이 모인 네덜란드 북부7주는 독립을 선언, 상인의 국가로 유명한 네덜란드가 탄생한다. 노동으로 돈을 버는 것을 탐탁지 않게 여긴 카톨릭과 달리 개신교는 일하는 것이나 돈버는 것을 선이라 생각했다. 이윤을 추구하는 합리적인 정신과 개방성을 가진 나라로 유럽전역의 상인들이 몰리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사람이 집중되니 온갖 정보가 모이기 시작했고 이는 상인들에게 귀중한 자산이었다. 특히 암스테르담의 시장은 그곳에서 성립한 거래에 대한 ‘종가’정보를 제공했다. 물품들이 얼마에 거래되었는지 나타내는 가격표는 상인들이 간절하게 원하는 정보였다. 각종 거래소가 설치되고 가격표를 공표하면서 암스테르담의 시장가치는 점차 커져갔다.
네덜란드의 위치상 동방 교역에 참여하기 위해선 발트해를 거쳐 꽤나 돌아 나가야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희망봉을 찾아 새로운 항로를 개척한 포르투갈에 비해 지리적 위치가 그리 좋은 편은 아니었다. 한번 항해를 떠나면 기존의 적수 스페인, 포르투갈, 그리고 영국의 표적에서 벗어나야 했고 항로가 길어질수록 해적들에게 노출되는 확률도 높았다. 거금을 들여 배를 만들어도 약탈당하거나 침몰하면 손해가 막심하니 돈을 들여서 튼튼하고 화력을 높인 배가 필요했다. 또 그저 배를 왕복시키는 데에 그치지 말고 인도 등에 현지 거점을 만들어 두자는 발상이 대두되기 시작했다.
이런 취지로 설립된 것이 바로 동인도회사 VOC(Vereenigde Oostlndische Compagnie)이다. 거액의 자금을 조달하기 위해선 가족이나 지인뿐만 아니라 아예 연고가 없는 투자자들까지 끌어들일 수밖에 없었다. 이렇게 무연고 주주들이 등장했고 동인도회사는 최초의 주식회사 형태를 갖추게 된다. 이에 따라 사업의 이윤은 더욱 정확하게 계산되어야 했고 이윤을 출자 비율에 따라 공평하게 책임(Account)이 있었다. 이런 책임을 바탕으로 본격적으로 회계(Accounting)의 모습이 갖춰지기 시작했다.
물론 처음부터 완벽할 순 없었다. 원시적인 회계구조는 VOC가 지속가능하기 어렵게 만들었다. 예를 들어 상품별 이익정보나 상품별 손익계산을 할 수 있는 세그먼트 회계구조가 없었고 감사도 전혀 시행되지 않아 주주들의 분노를 샀다. 배당의 한도 기준을 정하지 않아 호기롭게 배당이 이루어지니 장기적 발전을 위한 내부 유보금이 부족할 수밖에 없었다. 동인도회사의 실패는 이렇게 후세의 회계학에 훌륭한 교훈들을 남기며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진다.
0. 마치며
직장을 고를 때 가장 중요한 것은 무엇일까? 명확한 해답을 가지고 취업하는 사람들은 별로 없다. 명확하다고 믿고 있던 기대도 막상 취업을 하면 내가 예상한 범위를 훨씬 웃도는 현실과 마주하게 된다. 하지만 내 직업의 의미에 대해 지속적으로 고민하고 구체화하는 과정도 성장의 일환이자 내 일을 사랑하는 방식일 것이라.
요즘 스토리를 구성하면서 내 일의 의미와 사회적 역할을 찾는 작업이 크게 도움 되고 있다. 특히 내 직업(혹은 전공분야)과 관련한 역사를 아는 것이 스토리를 구성해 나가는 데 꽤 괜찮은 소재가 된다. 혹시 금융권에 취업을 준비하는 학생이나 막 취업한 사람들이라면 이와 관련한 책들을 권하고 싶다.
* 스토리는 학문의 의미를 찾는 데에도 도움이 된다. 난해한 용어들로 가득한 회계학 책을 넘기기 힘들었다면 이 책을 먼저 읽어보자. 왜 운전자본이 Working Capital인지, 뜬금없이 공식에 ‘듀퐁 Dupont’이 왜 나오는지 재미있게 설명되어 있다. 마치 인문학 책을 읽는 듯한 느낌으로 회계학의 스토리를 공부해보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