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물학적으로 잠이란 하루 동안 쌓인 피로를 해소해주며 뇌의 활동을 회복시켜주는 활동으로 정의된다. 또한 좀 더 철학적으로 접근하자면 잠이란 평화로운 안식이며 어제와 오늘을 구분 짓는 기준이자 새로운 하루를 맞을 준비를 하는 의식이다. 그렇기에 우리는 어찌 보면 경제학적으로 비효울적이라고 생각 할 만큼 하루의 많은 시간을 잠에 투자한다. 이것은 비단 사람에게만 적용되는 것이 아니다. ‘잠’은 생명을 가진 모든 것들에게 필수불가결한 요소이다. 잠이란 곧 생명인 것이다.
‘하지만 내 의식은 평소보다 더 말짱했다’
평범한 가정주부인 이 책의 주인공은 악몽을 꾼 뒤부터 잠을 자지 ‘못’ 하게 되었다. 주변 사람들은 아무도 그녀가 잠을 자지 못한다는 것을 인지하지 못한다. 하지만 그것은 다른 사람들의 잘못이 아니다. 잠을 자지 않게 된 이후부터 오히려 전 보다 더 활기차고 생명력이 넘치는 그녀를 보며 그녀의 주변사람들은 그녀가 잠을 자지 않은 사람이라고 생각 할 수 없었을 것이다. 그녀는 잠을 자지 못해도 ‘내 의식은 평소보다 더 말짱했다’라고 말한다.
아이러니다.
그것은 아마 모두가 잠을 자는 시간동안 잠을 자지 않으므로 생기는 온전한 그녀의 시간, ‘나 자신의 시간’이 있기 때문일 것이다.
‘의무로서 쇼핑을 하고 요리를 하고 청소를 하고 아이를 돌봤다.’
‘나는 경향적으로 소비되는 일 따위는 하고 싶지 않다.’
잠을 못 자기 이전의 그녀는 지루하다. 똑같은 하루가 반복되는 그녀의 시간은 마치 규칙적으로 돌아가는 시계태엽 같이 묘사된다. 이것은 단지 규칙적인 생활에서 오는 회의감이 아니다. 이 지루함은 그녀의 시간이 아닌 데에서 오는 회의감이다. 주인공은 항상 그녀의 남편과 아이를 위해 움직인다. 혼자 있을 때는 그들을 위해 집안일을 하고 같이 있을 때에도 대화의 주제는 항상 그녀가 아닌 남편과 아이 위주로 진행된다. 나는 이러한 주인공의 지루한 삶에 대한 회의감이 잠을 자지 않는 행위로 표출된 것이라 생각한다. 남편과 아이에게 헌신하는 시간을 제외하고 ‘나’의 시간을 갖기 위한 잠의 부재인 것이다. 그도 그럴 것이 나중에 그녀는 처음 잠을 못 자게 되었다는 불안함에서 벗어나 그 상황에 만족하며 일탈 아닌 일탈을 즐긴다. 소설의 초반에는 그녀가 잠을 ‘못’ 자는 상태로 묘사되지만 소설이 후반부로 흘러갈수록 그녀는 잠을 ‘못’ 자는 것이 아니라 ‘안’ 자는 다는 느낌을 강하게 준다.
‘요컨대 나는 인생을 확장하고 있는 것이다, 라고 나는 생각했다.…… 어느 누구에게도 방해 받지 않고 아무것도 요구받지 않으면서...’
보통 이 책을 읽다보면 그녀가 잠을 자지 않으면서 느끼는 일련의 감정들이 잠을 못 자기 이전보다 훨씬 더 긍정적이고 만족스러운 형태로 묘사된다는 것을 느낄 수 있다. 때문에 ‘잠’을 자지 않는 행위가 결과적으로 그녀에게 삶의 생기를 불러일으킨다고 생각하게 된다. 하지만 이것이 과연 정상적인 것일까 생각해 보아야 한다. 이 책에서 그녀는 거의 3주 동안 잠은 자지 않는다. 그것은 생물학적으로 불가능한 일이며 비정상적인 일이다. 나는 이러한 그녀의 상태를 보며 일전에 읽었던 책에 있었던 ‘내가 원하는 것으로부터 나를 보호하라’는 글귀가 떠올랐다. 그녀는 그녀가 원하는 것으로부터 어느 정도 그녀를 보호해야 한다. 잠을 자지 않으며 그녀가 하고 싶은 일은 단기적으로 그녀에게 좋을 수도 있지만 장기적으로 본다면 이 책의 결말과 같이 결국에는 ‘burn out’ 되버리기 때문이다.
'각성한 암흑. 그것은 내게 죽음을 연상시켰다.…… 영원한 휴식, 블랙아웃이다.'
이 책을 읽고 나니 예전에 보았던 웹툰 하나가 떠올랐다. ‘잠 은행’이라는 이말년 작가의 웹툰이었는데 거기서의 주인공은 잠이 모자라 ‘잠 은행’에서 계속해서 잠을 대출 받다가 잠을 너무 많이 빌려서 결국에는 영원한 잠에 들게 된다. 이 책의 주인공도 웹툰의 주인공과 별반 다르지 않다. 사실 그녀는 그녀도 모르게 미래로부터 조금씩 잠을 빌리고 있었던 건지도 모른다. 그녀도 ‘나는 이런 정상적이지 못한 일을 지속한 데 대한 빚을 언젠가 갚지 않으면 안 될지도 모른다.’라고 말하며 이를 인정한다. 하지만 그녀는 ‘솔직히 말해 그런 건 나에게는 이미 어찌 되건 상관없는 일이었다.’라고 담담하게 말한다. 하지만 이 소설의 결말에서 그녀는 다시 ‘뭔가 잘못되어 있다’라고 말하며 그제야 현실에 대해 인지하지만 이미 그것은 너무 늦어버렸다는 것을 작가는 비극적인 결말과 함께 암시한다.
이 소설은 불면증을 앓던 대학생 때의 주인공에 대한 설명으로 시작한다. 과거의 불면증을 앓던 시기의 주인공은 현재의 주인공과는 사뭇 다르다. 과거의 그녀는 막이 서린 듯 흐릿한 머릿속과 불확실한 환각처럼 느껴지는 하루하루 속에서 불면증을 이겨내려고 노력한다. 하지만 현재의 주인공은 피곤하지 않다. 오히려 잠을 자지 않음으로써 살아있음을 느낀다. 과거 대학생 시절의 주인공은 현재의 주인공보다 주체적인 삶을 살고 있었을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깨어있는 시간에 충분히 그녀가 하고 싶은 일을 하며 살 수 있었을 것이고 따라서 굳이 잠을 자지 않을 필요가 없다. 하지만 현재의 주인공은 그렇지 못하다. 그녀가 깨어있는 시간에 그녀를 위해서 할 수 있는 일은 수영 30분이 전부다. 나머지는 그녀가 아닌 타인(가족)을 위한 시간인 것이다. 때문에 그녀는 잠을 자지 않는 행위를 통해 그녀만의 시간을 갖는다. 아마도 이것은 그녀의 삶을 살기 위한 불가피한 선택이었을 수도 있다.
리뷰 초반에 말한 바와 같처럼 잠을 생명에 빗대어서 생각해 본다면 어쩌면 그녀는 자신의 생명력을 담보로 자신의 시간을 찾기 위해 노력한 것인지도 모르겠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