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hat is Love?

작성자 Juyummy
출간일 2013-01-14

트와이스가 부릅니다..

What is Love?

 책을 읽기 전, 『왜 나는 너를 사랑하는가』라는 책 제목은 굉장히 매력적으로 다가왔다. 사랑하는 데에 이유가 있다니, 이유가 있다면 당장 알고 싶은 마음에 책장을 넘겼다.

 이 책의 서술자인 ‘나’는 런던행 비행기에서 989.727분의 1의 확률로 클로이와 운명적으로 만났다. 이어서 ‘나’는 클로이와 대화를 나누며 사랑에 빠졌다고 확신했다. ‘나’는 애가 타는 마음이 숨긴 채 (아니 사실 아직까지는 클로이는 ‘나’를 아직 사랑하지 않았기 때문에 클로이에게는 전혀 숨겨지지 않았을 것이다.) 클로이에게 구애한다. 결국, 이 둘은 서로 사랑에 빠지게 되고 ‘사랑한다’라는 말이 하찮게 느껴지도록 서로를 '마시멜로'하게 된다. 그러다 서서히 ‘나’는 클로이와 ‘나’ 사이에 높은 벽이 세워지는 느낌이 들었고, 이 단순한 느낌은 단순한 느낌이 아니라 절망적이게도 현실로 다가왔다. 클로이는 윌과 사랑에 빠졌고, ‘나’를 떠나게 된다. 이에 ‘나’는 어떠한 절망과도 비교할 수 없는 절망의 구렁텅이에 갇히게 되고, 자살을 시도한다. 시간이 흐르고, ‘나’는 이제 클로이에 대한 갈망과 그리움이 전보다 못한 것을 깨닫고, ‘우리’에서 벗어나 ‘나’의 자아를 찾게 된다.

 전형적인 사랑의 형식이지만, 이 책을 읽으면서 나는 상당히 여러 번 공감을 하면서 읽었다. 가장 공감이 되었던 부분은,

1) ‘나’가 클로이에게 사랑에 빠지면서 모든 생각을 그녀에게 맞춰서 한 점

2)클로이와의 사랑이 끝났을 때 ‘나’가 어마어마한 절망을 느낀 점

3)그녀와의 사랑이 끝나고 시간이 지난 후 ‘나’가 자아를 찾은 점

이 세 가지이다.

 사람들은 사랑을 할 때 말한다. “쿨(cool)해지고 싶다.” 사랑을 하지 않을 때에는, 생각을 할 때, 음식을 먹을 때, 거리를 걸을 때, 공부를 할 때 등 모든 일상이 온전히 자기 자신의 것이다. 나를 위한 생각, 나를 위한 음식, 거리, 공부가 되는 것이다. 하지만 사랑에 빠졌을 때는 달라진다. 우리를 위한 생각, 음식, 거리 등 모든 것이 나뿐만이 아닌 우리의 것이 되어 버린다. 이로 인해 우리는 사랑을 하면서 ‘나’에서 ‘우리’로 전환된다. 나는 사랑을 할 때 쿨한 모습을 지니는 것은 분명 ‘덜 사랑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사랑에 빠지면 앞서 말한 바와 같이 상대방의 모든 것에 대해 생각하고, 또 생각하게 된다. 이러한 과정 속에서 상대방에 대해서 더 많은 것을 알고 싶어 하게 되고, 상대방의 나에 대한 사랑을 확인하고 싶고, 상대의 모든 관심을 나를 향하기를 바란다. 이러한 욕구가 충족되지 않으면 내가 의도했건 의도하지 않았건 토라지게 되고 그 모습을 감출 수 없게 된다. 이 책에서도 또한 ‘나’는 자신을 낭만적 테러리스트라고 칭하며 클로이의 사랑을 갈망한다.

 사랑의 결말은 상대방의 사랑에 대한 갈망의 불균형에서 찾아온다. 사랑의 결말은 불행스럽게도 언제나 둘 중 하나의 심장이 먼저 식으면서 시작된다. 공평하게 모두의 심장이 동시에 식었으면 좋을 터이지만 둘의 사랑의 속도는 비례하지 않는다. 이 책에서도 클로이의 사랑이 먼저 식어버림에 따라 클로이와 ‘나’는 ‘떠나는 사람, 남겨진 사람’의 형태를 갖게 된다. 이때 물론 클로이도 ‘나’에 대한 미안함에 잠 못 이루는 밤도 많았고, 눈물로 지새우는 날도 많았겠지만 ‘나’의 절망과는 절대 비교할 수 없을 것이다. 함께 밥을 먹고, 함께 영화를 보고, 함께 밤을 지새우고, 함께 따스한 햇살을 맞이하고, 함께 울고 웃던 나날들을 클로이는다른 이와 실행하면서 ‘나’의 존재의 소중함을 서서히 잊어갔지만 ‘나’는 그 모든 것들을 아직도 소중히 여기고 있지만 그녀는 떠나버렸다. ‘나’는 스스로 그 기억들을 지워나가야 했고, 그 과정에서 여전히 클로이의 얼굴, 몸, 향기가 남아있어 ‘나’는 더욱 고통스럽다. 그 기억을 잊는 동안, ‘나’는 자살을 시도하기도 하고, 하루에도 몇 번씩 절망에 빠지곤 했다. 세상에서 가장 슬픈 사람 행세를 하며 살아가다가, ‘나’는 어느 샌가 클로이를 잊어갔다. ‘나’는 다시는 위독한 병에 들어 앓고 싶지 않아 사랑을 하지 않겠다고 다짐하지만, 또다시 사랑에 빠지게 된다.

 『왜 나는 너를 사랑하는가』를 읽으면서 처음에 답을 얻고 싶었던 ‘왜 나는 너를 사랑하는가’에 대한 질문은 어느 정도 해결이 된 것 같다.

내가 너를 사랑하는 것은 너의 재치나 재능이나 아름다움 때문이 아니라, 아무런 조건 없이 네가 너이기 때문이다. 내가 너를 사랑하는 것은 너의 눈 색깔이나 다리의 길이나 수표책의 두께 때문이 아니라 네 영혼의 깊은 곳의 너 자신 때문이다.(p191)

 사랑을 하기 전, 내가 바라던 이상형은 키도 크고 외모도 출중하며 지적이고 뚱뚱하지도 마르지도 않으며 능글맞지 않고 손이 크고……등 아주 복잡하고 까다로웠다. 하지만 정작 내가 좋아하게 된 사람은 키도 크지 않고 외모도 전혀 출중하지 않았으며 약간 지적이기는 했지만 능글맞았고 손이 작았다. 나는 내가 좋아하게 된 사람과 몇 마디 대화를 나누면서 ‘그냥’ 좋아하게 되었다. 아무런 이유 없이 마음 속 깊은 어떤 곳에서 마구 끌리는 무엇인가 때문에 ‘그냥’ 좋아하게 되었다. 이런 증상으로 나는 책 속의 서술자처럼 사랑을 앓았고 사랑을 갈망했다. 하지만 상대방은 클로이와 같이 내가 바라던 사랑의 크기만큼의 사랑을 주지 않았고, 사랑의 불균형으로 끝내 이별을 맞이했다.

 사랑은 어쩌면 ‘한다’라는 표현보다 ‘앓는다’라는 표현이 맞는 것 같다. 사랑에 빠진 사람은 어떤 정확하고 명확하며 객관적인 것을 볼 수 없게 된다. 이러한 증상은 분명 정상은 아닌 것으로 보인다. 사랑을 앓는 기간은 사랑에 빠져 상대방에 대한 객관적인 사실을 볼 수 없을 때 시작하여 상대방을 서서히 잊어가는 시기까지라고 정의하고 싶다. 사랑을 앓고 있을 때는, ‘왜 너는 나를 사랑하지 않는가?’라며 끊임없이 질문을 던지지만, 사랑을 앓고 난 후에는 그 질문에 대한 답을 어느 정도 인지하게 된다.

 이처럼 절망적인 사랑을 앓고 난 후에도, 여전히 우리는 사랑을 갈망하고 사랑을 시작한다. 사랑이 끝났을 때의 절망보다 사랑이 시작될 때의 설렘이 더 크기 때문일까? 

사랑 이별 알랭드보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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