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패한 영웅, 항우에 대해서

작성자 imfairy
출간일 2012-07-24

 

실패한 영웅, 항우에 대해서

가장 좋아하는 역사 속 인물이 누구냐 묻는다면 늘 항우라 대답했다. 아마도 첫인상이 강렬했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항우에 대한 첫 기억은 영화패왕별희에서 시작한다. 극 속 장면 하나하나 깊이 남아있을 정도로 몇 달을 여운에 빠져 지냈다. 자연스럽게 많은 사람의 심금을 울리는 항우라는 인물이 궁금해졌다.

그리하여 사마천 사기의항우본기를 읽었다. 한 인물의 짧은 일생에서 천하를 호령했던 패기와 동시에 천하를 잃은 공허함을 느낄 수 있었다. 과연 누가 이토록 드라마틱 한 삶을 살 수 있는가.

항우는 왜 실패한 영웅이 되었을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왜 좋아할까?’

그 물음에 대해 파고들기 위해 이 책을 선택했다.

'항우강의는 항우가 어떠한 실책과 착오로 실패한 영웅이 되었는지 분석하고 있다. 동시에 이를 타산지석으로 삼아 통치자나 지도자가 성공하기 위해 갖추어야 할 도량과 덕치를 제시하고 있다. 먼저 항우의 일대기를 간략히 소개하자면 다음과 같다.

 

서초패왕에서 사면초가에 이르기까지

항우가 역사 무대에 본격적으로 등장한 것은 단 7년밖에 되지 않는다. 그의 인생은 '크게 흥한 3년'과  '크게 몰락한 4년'으로 나눌 수 있다.

'크게 흥했다'는 반진의 깃발을 들고 3년 만에 진나라를 멸망시킨 후, 서초패왕이 되어 18명의 제후왕을 거느리며 천하를 호령한 시기이다.(p.14) 그는 탁월한 군사적 능력으로 제후 연합군을 이끌며 거록의 전투에서 대승을 거둬 진을 멸망시켰다.

이 시기 함께 기병하여 진나라를 무너뜨렸던 인물이 유방이다. 유방은 옛 진나라의 핵심 영토이자 전략적 요충지였던 관중을 차지하자 천하를 손에 넣으려는 야욕을 드러낸다. 서초패왕의 자리를 위협하는 초한 전쟁이 본격적으로 시작되는 순간이다.

'크게 몰락했다'는 4년간의 초한 전쟁 끝에 오강에서 자살로 생을 마감하기까지를 이른다.(p.14) 서초패왕에 오른 뒤 잘못된 분봉으로 제후들의 원망을 샀고, 거듭된 실책으로 충신들 또한 그를 떠났다.

결국 유방을 필두로 제후 군은 연합하여 항왕에게 반기를 든다. 항왕은 팽성의 전투에서 3만 정병으로 유방의 56만 대군을 격파하는 등 버텼지만 제후 군의 세력은 날로 커졌다. 결국 사방에서 초나라 노래가 들려오는 사면초가의 상황에까지 이르렀고, 해하 전투에서 대패한다. 28명의 정병으로 5000명의 유방의 군대에게 결사항전하던 항왕은 오강 앞에서하늘이 나를 망하게 하려는데 강을 건너 무엇하느냐며 운이 다했음을 직감하고 자결한다.

 

항우는 왜 천하제패를 눈앞에 두고

비극적인 운명을 맞이하게 되었을까?

이에 대해 사마천은 다음과 같이 평가한다.

"자신의 공을 자랑하고 사사로운 지혜만 앞세운 채 지난 일을 배우지 못했다. 이 때문에 패왕의 업을 이루고도 힘으로 천하를 경영하려다가 5년 만에 끝내 그 나라를 망하게 만들고 몸은 동성에서 죽으면서도 여전히 깨닫지 못하고 자신을 나무할 줄 몰랐으니 이게 잘못이었다. 그러고도하늘이 나를 망하게 하려는 것이지 내가 싸움을 못한 죄가 아니다며 핑계를 댔으니 어찌 잘못이 아니랴! - 사마천, 『사기』"

 ‘사기는 패인을 항우 자신에게서 찾는다. 즉 스스로에 대한 무지와 자만함으로 패망에 이르렀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 책은 항우 내부적 요인에만 주목하지 않는다. ‘주변인의 실책이라는 외부적 요인 또한 제시한다. 항우의 독단적이고 폭압적인 성격은 잘 알려져 있으니항백의 실책범증의 실책에 주목해보고자 한다.

 

1. 항백, 홍문연에서 두 영웅의 운명을 뒤바꾸다

항우와 유방의 운명이 뒤바뀌게 된 결정적 계기는홍문연사건이다. 우리에게 홍문연은 한반도 사드 배치에 관한 중국 왕이 외교부장의 발언으로 익숙할 것이다. 당시 왕이 외교부장은항장검무, 의재패공(항장의 검무는 패공(유방)을 해하려는 데 뜻이 있다)‘며 한국을 강하게 비판했다. 유방이 역사 무대에서 사라질 뻔했던, 천하 패권의 판도를 바꾼 사건이 바로홍문연이다.

항우의 충신인 범증은 유방이 천자가 되려 하는 야망을 눈치채고 죽여야 한다 주장했다. 하지만 이를 방해한 인물이 항우의 삼촌인항백이다. 항백은 유방의 충신인 장량과의 의를 지키기 위해, 이러한 계략을 유방 진영에 전달한다. 본디 홍문연에서 항장이 검무를 추며 패공을 죽이려 했지만, 패공은 교묘한 술수로 항우의 정치적 경각심을 무너뜨렸다. 게다가 항백이 온몸을 바쳐 검무를 막아준 덕에 목숨을 부지하여 도망갈 수 있었다. 유방의 군사력이 성장하기 전, 숙명의 라이벌을 제거할 수 있는 처음이자 마지막 기회였다. 하지만 모순적이게도 그 절호의 기회를 놓치게 된 것은 항우의 최측근, 항백 때문이었다.

2. 범증, 그는 진정 훌륭한 모사였는가?

범증은 항우의 유일한 충신이었다. 따라서 범증은 항우의 실패에 대한 책임에서 절대로 벗어날 수 없다.(p.271) 범증의 가장 큰 실책은 진나라를 무너뜨린 뒤 혼란의 시기에 초 회왕을 옹립하도록 한 것이다. 범증의 건의로 항우는 초 회왕을 옹립하지만, 초 회왕은 유방을 도왔다결과적으로는 항우로 하여금 관중이라는 요충지를 빼앗는 결과를 낳았다. 성급한 판단이었다. 이곳에서부터 두 영웅의 운명은 뒤바뀌게 되었다 평가받는다. 그뿐만 아니라 천하를 다투는 상대가 유방임을 알고 있음에도 항우에게 알려주지 않은 것과 잇따른 중대한 실책에서 범증이 모사로서 등장하지 않은 것 또한 안타까운 대목이다.

 

그렇다면 나는 왜 항우를 좋아할까?

나는 항우의 어떤 자질에 동요되고 감탄하는 것일까.

정면돌파의 영웅

항우는 여전히 중국인의 마음속에 영웅 중의 영웅으로 살아있다. 그가 지휘한 전투에서는 자신감과 일종의 통쾌함까지 느껴진다. 만인이 꿈꿔오던 진정한 영웅의 모습이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송나라 오룡한의 <오강항우묘> 속에 항우와 유방, 두 영웅의 차이가 극단적으로 드러난다.

"세상을 뒤덮을 무공을 자랑하는 영웅이

오강에서 마지막 피를 뿌렸으니,

영원히 남을 한이 쉬지 않고 흐르는구나.

유방은 어이하여 의제(회왕)를 이용하는 계획을 세웠는가.

바로 그날이 항우 그대가 패하는 날이었어라.

오룡한, 『오강항우묘』"

유방은 항우와 싸울 때 정치적, 군사적 수단을 모조리 동원했다. 하지만 항우는 거칠었고, 정치적인 수단을 쓰는 것을 거의 몰랐다.(p.361) 혹자는 항우를 어리석다고 할 수 있으나 이는 스스로의 군사적 능력에 대한 자신감이었다.

자신감이 가장 극적으로 드러남과 동시에, 나를 감탄하게 했던 대목은 마지막 항우가 자결하던 순간이다. 사면초가의 상황에 몰린 항우는 동성 전투에서 28명의 기병들로 5000명의 추격병을 상대한다. 그는 비장한 어조로 자신에게 남겨진 단 28명의 기병들에게 말한다.

"나는 지금껏 한 번도 패하지 않았으나 이 지경에 이르렀다.

오늘 나는 결사항전을 할 생각이다.

시원스럽게 한 번 싸워볼 생각이다.

내가 전투를 잘못한 것이 아니라

하늘이 나를 망하게 하려 한다는 사실을 너희들이 보도록 하겠다."

항우는 즉시 전장으로 뛰쳐나가 한나라 장군을 참살하고 수십 명을 죽였다. 이 때 희생된 항우의 병력은 고작 두 명의 기병뿐이었다. (p.256) 

이어 전장을 빠져나왔지만, 막다른 오강에 이르게 된다. 오강의 정장은대왕께서는 빨리 강을 건너십시오.”라고 했다. 하지만 항우는하늘이 나를 망하게 하려 하는데 강을 건널 필요가 있겠는가!”라며 정장에게 자신의 애마를 선물로 주고 한나라 추격병 쪽으로 다가간다.

그때 한나라의 장군이자 과거 자신의 부하였던 여마동을 발견한다. “나는 한왕(유방)이 내 머리에 천금의 상금과 1만 호의 성읍을 현상금으로 걸었다는 소리를 들었다. 그대들에게 좋은 일을 해주겠다.”라고 하며 오강 앞에서 자결한다.(p.260) 한때 천하를 호령했던 서초패왕은, 현상금에 눈이 먼 한나라 군대에 의해 형체도 없이 나누어지며 비극적인 최후를 맞이한다.

그는 죽음의 순간까지 자신을 도와주려 한 정장과 과거 부하로 있던 여마동과의 의를 생각하는 영웅이었다. 또한 혼자 살아남을 수 있었음에도 피하지 않고 운명에 정면돌파한다. 그가 인간적으로 어떤 사람이었든지 간에 그저 '멋있다.'라는 생각밖에 들지 않았다. 위기상황 속에서도 자신의 삶을 대하는 당당하고 자신감 있는 태도.

항우는 겉과 속이 같은 유일한 영웅으로 평가받는다. 단 한 번도 왕도를 걷지 않았다. 정도에서 정정당당히 승리하기도 했으며 정정당당히 패하기도 했다. 그는 비록 실패한 영웅이었지만 나는 항우에게서 진정한 영웅본색을 느꼈다. 그리고 매사 가식이 아닌 진심으로 사람과 삶을 대하고 싶은 나에게 큰 울림을 줬다. "진심은 틀리지 않아, 실패한다해도 멋있어." 라고.

역사는 승자의 편에서 서술된다. 승자의 기록 속에서 수많은 영웅과 호걸이 등장했지만 항우만큼 여전히 회자되고 수많은 작품의 모티브가 되며, 불후의 향취를 자극하는 영웅은 드물다. 항우에 대한 찬탄과 안타까움을 읊은 시가 역시 상당수 전해지고 있다. 살아가며 자의든 타의든 쉽게 작아지는 우리는, 그로부터 세상에 기죽지 않고 돌파하는 자신감과 당당한 태도를 배우고 싶은 것인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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